호국 불교의 저력
호국 불교의 저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0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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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전 철 호 <불교대학 교무처장>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한 것이 공식적으로 372년이니 우리나라의 불교역사는 곧 1700년이 된다. 사상초유로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1만여 스님들과 20만명의 신도들이 불교계가 처한 현실에 대한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역사적으로 기록될 이 사건을 바라보는 불교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울분을 토해보기도 하지만 위정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불교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짓밟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불교를 호국불교라고 칭하기도 하는 것은 불교 사상은 종교보다는 먼저 국가를 중요시하는 데 있다. 절에서 예불을 올리기 전에 하는 종송에는 반드시 5가지 큰 은혜에 대해 잊지 않도록 하는데 그중에 가장 먼저가 국가에 대한 은혜이다. 그런 바탕에서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가의 가르침에 앞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스님들도 몸소 승군을 조직해 누란의 위기에 있는 나라를 지키고자 창검을 잡은 것이다. 억불숭유정책 때문에 스님들이 종처럼 취급되고, 서울 사대문 안에 출입도 금지되었던 조선시대에도 그렇게 불교는 나라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2005년 11월 1일 현재 약 4700만 명의 한국인 가운데 종교를 가진 인구는 2497만명(53.1%)에 달하며, 총인구 중 불교 인구가 22.8%(1072만)로 가장 많았고, 개신교 18.3%(861만), 천주교 10.9%(514만) 순으로 나타났다.

불교는 교리적 특성상 적극적인 신행 활동을 표출하기를 자제하는 미덕을 지니면서 다른 종교의 이질성을 포용하고 때로는 절충하면서 한국적 불교로서의 자리매김을 해왔다. 절에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신각과 칠성각 같은 것은 토속신앙을 접목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국교가 정해지지 않고 다종교가 공존하는 한국사회에 종교 간의 갈등을 미리 방지하고자 종교지도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교류하는 종교평화협의회라는 조직에서 필자도 활동하면서 이웃종교와 대화의 장을 넓혀나가기도 한다. 부처님 오신 날은 이웃종교 지도자들이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주었고 불교에서도 예수 탄생을 기뻐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20세기 가장 충격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불교가 서양에 전래한 것이라고 했다. 핵무기 등장, 우주여행, 많은 인명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보다도 더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원융화합을 강조하면서 배타적인 교리보다는 극단을 배제하는 중도의 가르침이 우리 인류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자연과 인간의 행복, 그리고 온 우주의 행복을 추구하는 불교의 교리가 확산할 때 인류는 조금 더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 내부에서도 각성의 소리를 높이면서 단합된 모습을 과시하고자 하는 행위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누가 깊은 산중에서 수행 정진을 일삼는 스님들을 거리로 불러내려고 하는지 조용한 깨달음을 표방하는 불교인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먼저다. 말 없는 다수를 힘으로 억압하고 무시해도 되는지

1700년 동안 우리 민족과 고락을 함께 해오면서 문화를 꽃피워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명성을 떨치도록 기여해 왔고, 우리들의 정서와 생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민족적 전통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은근과 끈기의 한민족이며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핍박 속에서도 불교는 우리 민족 속에 깊이 뿌리 내려왔음을 망각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모습은 걸리고 편벽됨이 없이, 가득하고 만족하며 완전히 일체가 되어 서로 융화하며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원융무애한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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