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이겼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8.1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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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영동)

정권의 집요함이 섬뜩하다. 대통령이 11일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했다. 형식은 KBS 이사회의 제청을 받아들인 것이지만 해임 결정을 이사회의 뜻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복경찰들의 호위를 받으며 회의장을 떠나는 이사들의 구차한 모습이 감독이 누구이고 조연이 누구인지 암시한다. 올림픽 금메달이 잇따라 터져 국민들의 시선이 북경으로 옮겨간 시점을 택해 결정타를 날리는 모양새도 식상하고 치졸하다.

정권의 언론장악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법치가 유린됐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염려스러운 것은 '대통령은 전능하다' 혹은 '대통령은 전능해야 한다'는 절대권력이 추구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권력에 대한 도전이나 저항을 간과하지 않겠다는 외고집이 곳곳에서 읽혀져 왔다.

수개월에 걸쳐 검찰과 감사원 등 권력기관이 총출동하고 대통령이 합법성 논란까지 빚고 있는 권한을 행사했다. 그래서 방송사 사장 1명을 물러나게 하는데 성공했다. 싸움은 끝났고 승자는 가려졌지만 남겨진 여운은 무겁다. 구 정권의 마지막 흔적을 지워냈다는 승자의 자부보다는 권력의 주인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이 알량한 싸움에서 승리해 권력의 체면을 세웠는지는 몰라도 국민들은 청와대보다 KBS 사장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간의 권력적 행태는 이같은 상황을 꾸준히 예고해 왔다. 내각과 청와대 인사때 마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의혹과 비판이 제기됐지만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할 인물들은 아직도 등장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인사에서 국민정서를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고 했지만 구두선에 그쳤다. 원구성을 위한 여야 합의안은 청와대의 한마디로 휴지조각이 됐다. 국민들에게 국회를 원격조정하는 실력자가 누구인지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대의정치, 정당정치의 근본은 송두리째 훼손됐다.

청문회 없는 장관 임명도 강행됐다. 그렇지 않아도 잔뜩 얼어붙은 정국에 칼바람을 불어넣은 형국이다. 상대(야당)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노골적인 독선 앞에서 아군인 한나라당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공기업 임원 낙하산 인사도 마찬가지다. 역대 정권이 되풀이 해 이제는 관행이 되다시피했지만 현 정권에서의 정도는 몰염치 수준이다. 대선 공신에 지난 총선의 낙선·낙천자들이 수두룩하고 대통령의 서울시장과 CEO 시절 측근들도 한자리씩을 꿰찼다. 오죽하면 이 정권을 지지한다고 알려진 삼총사 신문의 한 사설조차도 "공수부대장도 이렇게 낙하산을 띄우지는 않는다"며 '전대미문의 제식구 챙기기'라고 일갈했겠는가.

보수 일각에서는 청와대 위상회복론도 제기되는 모양이다. 전임 대통령이 어줍잖은 탈 권위를 내세워 청와대의 무게를 떨어트렸다는 것이다. 촛불시위가 청와대로 향한 것도 따지고 보면 전 정권의 물러터진 이미지에서 시발된 만큼 권위회복이 급하다는 시각이다. 혹 대통령이 이런 궤변에 동조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외곽의 연구기관까지도 내 식구를 보내 철저하게 장악하겠다는 의중을 달리 헤아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민이 원하는 강한 리더십에 부응하려면 이기는 것을 능사로 아는 비정한 승부사가 아니라 필요한 싸움만 챙기는 생산적인 승부사가 돼야 한다. 국민들이 걱정하는 것은 국정을 추진하는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한 권력의 그 다음 행보이다. 대통령은 해임안에 서명하며 "KBS도 이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그쪽에만 해줄 말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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