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춰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12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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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신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게 된 인간은 그 미지의 땅을 '신대륙'이라 불렀습니다. 자신들의 눈에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있어 왔던 그 땅이 신대륙이 된 것입니다. 독도를 리앙쿠르암석으로 명하는 것 또한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의 무지와 오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야생의 광활한 땅을 황무지로 인식한 백인들은 수천수만 년을 거치며 형성된 생태계의 사슬을 모조리 끊어버리고 그들의 편의대로 자연을 왜곡시켰습니다. 마침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전멸되다시피 했으며, 대평원의 버팔로들은 대량으로 학살되었습니다. 아메리카 서부의 거대 축산업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싸고 맛있는 소고기를 먹기 위해 인디언과 버팔로와 대평원의 많은 야생 생태계가 몰살을 당한 것입니다. 성장을 거듭한 미국의 축산업은 오늘날 백인들의 식탁을 넘어 아시아 한국의 시장 개방을 강요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여태까지 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와 나의 삶은 결부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00여년이 지나 우리의 식탁에 인디언 학살의 역사가 연결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한 세기의 반도 더 지난 인디언의 피맺힌 역사는 고스라니 덮여지고, 이미 주인이 된 백인들의 시장주의 제일 가치가 핵심이 된 21세기이기 때문입니다. 인디언의 고난을 곱씹으며 둔감하고 무지했던 인류사에 대한 제 인식의 한계를 반성합니다.

화학약품의 위험성은 이미 자연 생태계의 최종 소비자라는 인간에게 그대로 드러나고 있지만, 경제적 이익을 위해 차선의 방법을 고려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처음 개발되어 사용됐던 서구의 역사를 보면 해충으로 분류된 애벌레를 손쉽게 죽이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애벌레를 먹는 새와 물고기 등 주변 생태계가 약품에 오염된 것이 드러나고, 당국이 위험성을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다수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화학약품이 가진 위험성을 감추기에 급급했던 정부에 대항한 시민들의 오랜 저항의 결과였습니다.

이번 주 청주시에서는 4일간 항공방제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벼 병해충을 없애고 고품질의 쌀을 생산하고 농가의 부족한 일손을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고 효과적으로 쌀을 생산하기 위해 생태계의 죽음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힘 있는 다수자의 이익만이 진리가 되는 세상에서 버팔로와 인디언의 대량학살, 오늘 여기서 행해지는 자연 생태계에 대한 대량학살을 보며, 이미 만연된 다수의 논리 앞에 어떤 것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무기력을 경험 합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26). 진실, 진리에 대해 가지는 두려움을 불식시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자꾸 귓가에 맴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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