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파병보도 무책임한 언론들…
아프간 파병보도 무책임한 언론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8.07 2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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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장 <천안>

1. 또 진실게임인가.

6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한미 양국정상이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논의 여부에 대해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자의 질문에 '부시 대통령이 답변할 문제이지만'이란 전제를 깔고 "오늘, (파병에 대한) 관련된 논의는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그 직후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논의했었다. 내가 이 대통령에게 유일하게 말 한 것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비군사적 지원'이었다"고 말했다.

전투병력 외의 지원문제를 양 정상이 논의했음을 공개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국민들은 헷갈린다. 이미 언론이 5일부터 부시 대통령이 파병 요구를 할 것이라는 추측 기사를 대서특필하면서 혼란스러워진 마당인데 이날 양국 정상이 서로 다른 말을 했기 때문이다.

6일 오후 부시가 태국으로 떠난 뒤 밑바닥 여론은 대체로 두어가지다.

당연히 파병을 요구했을 것이며 현재 한국의 상황-미국에 대한 국민적 반감-때문에 양 정상이 이를 공론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그 첫째이고 또 하나는 부시의 말(비군사적 지원) 그대로 파병이 아닌 인도적 지원 요구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등이다.

둘 중에 뭐가 사실인지 또 모두가 틀린 말인지는 몰라도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 국민들이 자국 대통령이 한 말을 믿어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이 대통령은 거짓말을 했을까. 부시의 말을 100% 믿어준다고 치면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기자가 파병문제를 묻자 이 대통령은 파병에 대한 논의가 없었음을 밝혔고 부시 역시 파병 요구가 아닌 비군사적 지원에 대해서 말했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즉 이 대통령은 "파병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고 부시 대통령도 "파병이 아닌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면 오해가 풀린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기자회견장에서의 우리 대통령의 말에 쉽게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집권 후 '고소영', '강부자'에서부터 쇠고기 파동에 이르기까지의 불신의 벽이 새삼 두텁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2. 언론들이 매를 벌고 있다. 신문과 방송들은 이번 파병문제 보도에 신중하지 못했다.

6일 아침, 9대 메이저 조간 신문들 중 조선을 제외한 경향·국민·동아·서울·세계·중앙·한겨례·한국 등 8개 신문이 1면에 부시 대통령이 한국에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요청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경쟁하듯 올렸다.

그런데 기사를 자세히 뜯어보면 세상에 이런 오보가 없다.

중앙일보의 예를 들어볼까. 이 신문은 주 제목을 "부시, 한국군 아프간 파병 제의할 것"이라고 부제는 '와일더 보좌관 밝혀, 오늘 한미정상회담'이고 달았다. 그렇지만 정작 기사 내용엔 그런 말이 없다.

기사는 와일더가 "한국군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능력이 있는 만큼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미국은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쓰여져 있다. 글쓴이가 그 '역할'을 '아프간 파병'으로 단정해버린 것이다. 편집자도 기사 제목에서 와일더 보좌관이 "미국이 한국에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제의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못을 박아버렸다.

국민일보는 기사 첫머리에서부터 와일더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한 것처럼 전했다.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한국군 재파병을 공식 요청할 것이라고 미 백악관 고위관리가 강력 시사했다'라고. '한국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와일더의 한 마디가 '미 정부의 파병 요청 시사'로 둔갑해버린 것이다. 다른 언론들도 거의 마찬가지다.

꼬박 하룻 동안 온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 언론들이 7일자 조간에서 어떤 해명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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