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여름, 독립기념관장에게 조정래를 권하다
2008년 여름, 독립기념관장에게 조정래를 권하다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7.29 2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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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장 <천안>

1. 1994년 7월, 대하소설 아리랑의 2부 '민족혼' 편의 집필을 시작한 작가 조정래(65)는 책머리에서 이렇게 묻는다. '제2차 세계대전동안 독일 히틀러 정권에 의해 희생된 유태인 수는 400여만명. 그러면 식민치하에서 일제의 총칼에 학살당하고 죽어간 동포의 수가 얼마나 될까.'

그는 또다시 이런 질문을 던진다.

'한 학급 60명의 학생이 담임에게 손바닥 다섯대씩 맞게 됐다. 그들 중 누가 가장 아플까.' 그의 정답은 맨 마지막에 맞는 학생이다. 60번째로 맞아야 하기 때문에 앞서 59차례나 급우들이 매 맞는 모습을 보며 공포에 떨어야 하는 그 정신적 고통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그는 두 질문을 던진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며 일제 청산에 관대했던 우리 민족의 각성을 촉구한다. "유태인들은 히틀러 정권으로부터 단 3년동안 400만명이나 희생됐다. 그러나 우리는 그 열배가 넘는 무려 36년동안 같은 수의 사람들이 공포에 시달리며 희생됐다. 그런데 우린 어째 아직도 동포들이 일제에 의해 얼마나 죽어갔는지 그 어림 숫자도 모르고 있는가."

전 12권으로 완간된 아리랑은 적나라하게 사실적으로 일제치하 36년을 묘사하고 있다. 3·1 만세운동 전야의 긴박한 순간은 물론이고 일제의 주구 스티븐스 암살사건, 홍범도·김좌진 장군의 독립투쟁기 등 작가는 초인적인 열정으로 온갖 구체적인 사료를 수집해 독자들을 흥분과 감동의 세계로 몰고 간다.

스티븐스를 저격한 장인환 의사의 재판 통역을 맡기로 했던 이승만이 동포의 성금으로 호사스런 생활을 하다 "난 예수교인이라 살인재판의 통역을 맡을 수 없다"며 도망친 일, 우리가 국민시인으로 알고 있던 노천명·모윤숙이 종군위안부 모집에 나선 일제에 호응해 이를 조장하는 시를 쓴 일 등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사실까지 들려준다.

2. 독도문제로 한반도가 들썩이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또다시 기발한 인사를 단행해 욕을 '보너스'로 먹고 있다. 지난 24일 취임한 김주현 독립기념관장 얘기다. 그는 2004년 1월 행자부차관 시절, 국회 법사위에 정부 대표로 출석해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당시 법사위에서 "최종적으로 정부 의견이 뭐냐"고 묻자 그는 "친일행위자의 후손들이 반발해 국민적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며 정부 주도의 법 제정보단 학계로 넘기는 게 좋겠다는 뜻을 밝혔었다.

그가 독립기념관장에 취임하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에선 그의 퇴진을 위한 서명운동까지 전개되고 있다. 24일 5000명 서명 목표로 시작됐는데 벌써 목표치가 달성돼 1만명 서명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당사자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정부 의견을 전해달라는 총리실의 부탁을 받고 그걸 그대로 말했을 뿐 내 소신과는 다르다.난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다"고 항변했다.(실제 그는 1926년 항일결사조직인 성진회를 조직하고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주도해 옥고를 치른 김상환 선생의 아들이다.)

그러자 사회자가 힐책했다. "소신이 분명했다면 총리실의 요구에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했어야 했다"고 지적하자 "그렇다"며 꼬리를 내렸다.

아리랑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박용화가 있다. 농지침탈로 땅을 빼앗기고 일제와 싸우다 죽은 박건식의 두 아들 중 하나인데 형인 동화는 항일운동에 나서고 머리가 좋은 그는 판검사를 꿈꾸며 친일의 길로 들어서다 얄궂게 동남아 전선으로 끌려가 사경을 헤맨다.

2008년 여름, 김 독립기념관장의 필독서로 아리랑을 추천한다. P.S. 읽었더라도 또 읽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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