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이 총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국가는…
관광객이 총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국가는…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7.15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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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장 <천안>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정부 실력자들이 혼쭐이 났다. 엊그제 오전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 장관회의에서다. 참석자들은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이상희 국방부, 유명환 외교통상부, 김하중 통일부장관과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등.

그 면면이 모두 국가 권력의 핵심부에 서있는 실력자들이다.

박왕자씨 피격사건에 대한 대책회의였는데 대통령이 진노했다. 이 사건이 2시간이나 늦게 자신에게 보고된 점에 대해 신랄하게 질책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그들에게 "현대측에서 정부에 첫 보고가 된후 내게까지 보고되는 데 무려 2시간이 걸린 것은 정부 위기대응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이 확인된 것"이라고 말하고 개선방안과 재발방지대책을 세울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장관, 수석들이 어떤 대책을 세우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도 혼난 것으론 한참 멀었다. 사안이 보통 사안이던가. 대한민국 국민이 정부를 믿고, 아직은 휴전선에서 총칼로 대치해 있는 상대 '적성국가'에 여행을 갔다가 군인의 총탄에 피격을 받은 사건이 아닌가. 그 중차대한 사건이 통치권자인 대통령에게 늑장보고가 됐다는 게 어떻게 이해가 되겠는가.

시스템의 점검을 통한 재발방지대책은 물론 관련자들의 엄중문책도 따라야 한다는 여론의 지적은 당연하다.

늑장보고 뒤 청와대와 대통령의 대응도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은 오후 1시30분쯤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박씨 피격사건을 보고받았다. 국회연설을 50분 앞둔 상황이었다. 이미 국회 기자실에는 대통령의 대북제의 내용이 포함된 국회연설문이 배포된 상태. 청와대는 피격사건을 남북대화 제의와는 별개로 판단해 연설문을 수정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국회연설 전 대국민 공지를 통해 유감 표명을 했어야 했다.

대통령이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떨어진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지난 4월18일의 일을 잊었는가. 장소는 미 상의 주최 'CEO(최고경영자) 라운드 테이블'이 열린 워싱턴 미국 상공회의소. 이 대통령은 미 기업가, 재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얘기를 하다 갑자기 웃으며 "지금 보고를 받았는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고 깜짝발언을 했다. 게다가 수행원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참석자들의 박수까지 유도했다.

이 모습은 그대로 국민들에게 TV화면으로 비춰졌었다. 대통령이 이 발언을 한 때는 한미 양국정부가 공식채널을 통해 쇠고기 협상 타결 소식을 발표하기 수 시간 전이었다.

당시 왜 그렇게 국가간 중요한 협상 타결 소식을 미리 대통령이 경솔하게 알렸느냐는 논란도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한미FTA가 발목을 잡고 있던 상황. 졸속 쇠고기 협상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부시와의 회담을 앞두고 현지 분위기를 잡기 위한 대통령의 '오버'로 치면 그나마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순발력 있는 대통령이 이번 피격사건에 대해 국회에서 유감표명조차 하지않은 이유는 뭘로 설명될까. 북한에서 우리나라의 비무장 관광객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그냥 넘어갈 일인가.

늑장보고에 대한 청와대측의 해명을 들어보면 더 기가 막힌다. 청와대는 전체 사건의 내막을 파악해 보고하느라 늦었다고 변명했다. 내막을 파악하는데 2시간이나 걸렸다고 소가 웃을 일이다.

오전 4시50분쯤 박씨가 사망한 후 현대아산이 통일부에 이 사실을 보고할 때까지 무려 7시간 동안 정보당국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도 한심스러운 일이다. 우리의 정보채널은 북한에 어떤 정보 라인도 열어놓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 아닌가.

결론은 총체적 국가위기관리시스템의 부재. 이것 말고 더 설명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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