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주러 왔다
칼을 주러 왔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0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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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작가 이외수 선생님은 촛불집회가 계속되는 오늘의 상황을 묻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상의 야만을 인내하라'고 했습니다. 문명이 발전하지 않았던 원시시대를 야만의 시대라고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문명이 최고로 발달했다는 오늘날 일어나는 이 사태를 두고 야만이라 명명하는 작가의 시각에 동의하며 2000년전 예수님을 떠올려 봅니다.

인간 존엄이나 개개인의 권리의식이 부재했던 예수님시대에 사회적 약자들은 동물과 별로 다르지 않은 취급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폭력과 억압, 불평등과 압제에 대항해 "사랑하라", "사랑해야 한다"고 예수님은 처음으로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인간의 야만성에 칼을 드셨습니다. "...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 34)" 그 칼은 사슬을 자르고 자유를 찾는 해방의 칼이며 또한 강력한 저항이었습니다.

계급을 나누어 기득권을 가지고, 믿는 이들을 옥죄었던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와 21세기 대한민국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사회적 불평등과 약자를 방치하는 정치적, 사회적 구조를 기정사실화 하려합니다.

거리에서 자발적 노숙자가 된 촛불 든 국민들이 개독교()라 외치며 이 개독교()를 향해 서슴없이 욕을 합니다. 그리스도교에 대한 한문표기가 기독교(基督敎)이니, 대한민국에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종교가 개독교()인 셈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이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부끄럽습니다.

정보가 통제되고, 언로가 일 방향이던 시대의 소통방식을 가진 정부와 쌍방향의 소통으로 온갖 정보들을 공유하는 열린 방식의 국민 간에 이미 접점은 묘연해 보입니다.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려면 부모가 진보적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자식은 20년 후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데 부모는 20년 전의 사고로 자식을 끌고 갑니다. 지금 정부와 국민간의 괴리가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인터넷 보급률 세계 1위라는 대한민국에서 소통에 대한 최소한의 노력만 기울여도 다수의 국민이 어떤 사회를 원하는지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정부의 명령에 복종을 강요하는 전체주의 독재시기가 아닙니다. 경찰이 삼엄하게 거리를 에워쌌던 2∼30년 전의 대한민국이 아닙니다. 거리의 사람들이 대한민국 헌법 제 1조를 들고 나와 외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들 스스로 규정된 자신들의 권리를 인식하고 획득할 수 있는 고양된 수준을 가진 국민들입니다. 이념에 현혹된 불온한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정부의 인식에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이 저항합니다. 유모차를 밀며 젊은 엄마들이 저항합니다.

이외수 선생님은 야만을 인내하라 했지만, 2000년 전 예수님은 이미 야만과 싸우셨습니다. 그래서 못 박히셨고, 그러나 부활하셨습니다. 21세기 오늘을 사는 믿는 이들은 이 야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 믿는 이들이 진정 복음으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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