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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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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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량의 산&삶 이야기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아들을 통해 맺어진 히말라야와의 인연이 현실화되자 비로소 등산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히말라야 라운드 트랙킹 2개월 만에 10kg의 살이 빠졌고 선글라스 자국만 남기고 검게 타버린 아들의 피부를 보면서 중학생 남자아이에서 이제 성년이 됐음을 확인했다.

어렵사리 득남을 하였기에 행여 과잉보호로 모자(母子)분화의 실패를 겪지 않으려고 애써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한국의 많은 어머니들의 장남 과잉보호 혹은 외아들 과잉보호로 인한 실패사례들을 수없이 봐왔기에 더욱 의도적으로 아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모자분화의 실패사례를 분석해 보면 아들의 어머니에 대한 독립보다 오히려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분화 내지는 독립이 어려워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니 어머니들이 아들 특히 장남으로부터 독립하는 길은 어머니가 심적으로 강해지는 길이라는 점이다. 아무튼 아들과의 분화는 이렇게 일단은 성공한 셈이었다.

인간으로 한번 태어났으면 한번쯤 히말라야 고행(?)을 해봄직하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히말라야 트랙킹을 다짐하던 중 네팔문화탐방을 기획하여 4명의 학생을 모집하여 준비에 들어갔다. 잘 걷거나 등산을 해본 경험이 있는 학생을 선발하여 주3회 가벼운 우암산 등반을 시작으로 등산할 때의 금기사항과 꼭 해야 할 필수사항 등을 일러주었다.

그런데 선발된 학생 중 1명은 지리산 종주 3회 경험이 있다하여 선발했건만 그 가벼운 우암산 계단 중간에서 그만 얼굴이 노랗게 변하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큰일이다 싶어 "정말로 지리산 종주한 것 맞느냐"고 다시 한 번 확인하였더니 "걱정마세요. 늘 이러면서도 끝까지 천천히 올라가니까요."하면서 먼저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말대꾸를 할 기운을 아끼겠다는 뜻으로 알고 앞서 올라갔다. 훨씬 나이 든 교수가 앞장서서 가면 젊은 애들이 알아서 따라 올 거라 믿고 숨 차오름을 들키기 않으려고 심호흡하며 멋지게 시범을 보였다. 역시 장시간 걸어서 초등학교 다녔던 산골출신의 학생이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이 학생은 나중에 히말라야 트랙킹에서도 최고였다). 이것을 보면서 필자 역시 초등학교시절 먼 길 걸어 학교 다녔던 실력으로 현재의 나약한 나의 모습을 그나마 지탱해주고 있음을 새삼 알았다.

우리 일행이 한 산행훈련은 여느 산악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었으나 아무리 산악훈련을 많이 한다한들 고산에서의 고소증후군은 피할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알고 무엇보다도 고소적응을 위한 지리산 산행일정을 잡아 학생들끼리 다녀오게 하였다. 지리산에서 만난 다른 산행인들이 무슨 그런 모습으로 감히 히말라야를 꿈꾸느냐고 하면서 콧방귀를 뀌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들이 "그동안 어느 산을 타면서 연습했어요."라고 물어서 "우암산에서 연습했어요."라고 한 학생이 대답했더니 "내 평생 숱한 산을 다녀봤지만 우암산은 처음 들어보는 산인데 그게 어디 있어요"라 질문하여 박장대소하는 개그 아닌 개그를 듣기도 하였다. 4개월여의 준비 끝에 네팔행 비행기표를 예약하였다. 네팔행 비행기는 대한항공 직항선과 방콕 또는 홍콩경유의 저렴하게 가는 노선이 있다. 직항노선은 6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으나 비싼 반면, 경유노선은 저렴한 대신 10시간 이상 경유시간이 걸리는 불편함이 있다. 등산장비 등의 짐이 많은 관계로 가능한 직항노선을 권유한다. 최종 등산장비를 점검하고 새벽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나의 사무실에서 합숙, 점검 후 우리 일행은 정신무장 복식호흡 및 명상의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미 꿈속에선 히말라야 언저리에 와 있었다. 삶이란 고행을 멈추기 위해서 오랫동안 준비하며 살듯이 짧은 히말라야 트랙킹을 위해 우리는 4개월 동안 준비하며 살아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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