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구례 화엄사 ②
전북 구례 화엄사 ②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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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송부일의 문화재 돋보기
지리산 병풍에 싸인 속세 잊은 천년고찰

송 부 일

신라초기 건축물 보물 299호 대웅전


탑 앞 석축 위에 보물 제299호인 화엄사의 중심 건물 대웅전 있다.

대웅전은 신라초기 건축을 하여 인조 때 벽암 선사가 재건을 하였다는데 못을 사용하지 않고 조립한 섬세한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 팔짝 지붕으로 기둥 기둥사이 간격이 동일하여 높고 정연한 안전감과 아름다움이 같이한다.

이금당 안에는 조선시대 화려하게 장식해 만든 닫집 아래 흙으로 만든 법신 불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존 으로 모셨고 왼쪽은 노사나 부처님 오른쪽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다.

중창 당시 사적 기에 보면 금당, 불상, 불화, 단청, 기와, 범종을 참여하여 각기 만든 승려들의 명단이 일일이 열거 되었다. 삼존불 뒷 벽면에는 비로자나불을 주존 으로 모신 탱화가 꽉차있어 법당이 온통 불국 경지 같았다.

대웅전 현판은 일주문 현판을 쓰신 의창군이 하얀 글씨로 쓰고 그 사실을 낙관 하였다.

대웅전 아래에 있는 명부전은 일반 사원에서는 대개 3칸 이내로 조성하는데 비하여 화엄사 사세만큼 정면 5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주불인 지장보살은 인간이 죽은 후에 극락세계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저승 계의 보살로 꾸임 없는 얼굴에 소탈한 편의를 입고 머리에 두견을 썼다.

대웅전 바로 좌측에는 영전 있다.

영전은 조사나 선사들의 초상, 조소 혹은 그림을 모셔놓은 곳으로 얼마 전 장육전 벽면에 파편이 된 석 경을 탁본하여 이곳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영전옆 원통보전에는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칠성, 독성, 산신의 삼성을 모시고 불교와 우리 토속 신을 접목한 삼신전이다.


보물 300호 4사자 3층 석탑 위용 뽐내

원통보전에서 나오자마자 앞에 4마리의 사자로 장식된 보물 300호인 높이 3m인 4사자 3층 석탑이 서있다. 상층기단에 네마리 사자로 장식된 사 사자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탑신을 얹고 있는 석탑 형 건조물로 노조라고 부른다.

앞에는 부처님과 그의 제자 16아라한을 모신 나한전이다.

나한전 우측으로 국보 67호인 각황전 있다. 화엄 근본 도량 제일 인 각황전은 장육 전 이라고도 부른다. 원래는 장육전 이라고 현판을 달았으나 정유재란으로 전소 숙종 때 계파선사가 복원 각황전으로 개칭하였다.

장육 전은 벽암 스님이 제자 계파에게 불사 할 것을 부탁하여 중창을 시작하였다.

재원이 없는 계파선사는 밤을 새며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비몽사몽간에 한 노파가 나타나 "그대는 걱정 말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라.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불사 시주를 권하여라" 하고 사라졌다.

계파는 노인의 말대로 다음날 아침 아무도 모르게 절을 나섰다. 한참 길을 가는데 화엄사에 일을 도와주고 밥을 얻어먹는 노파를 만났다. 스님은 난감하였지만 간밤에 꿈을 생각하고 노파에게 장육 전 건립 시주를 정중하게 요청하였다.

어이가 없던 노파는 시주 할 수 없음을 계파에게 이야기했지만 스님은 포기하지 않고 하루 종일 노파에게 간청을 하니 감동된 노파는 눈물을 흘리며 "이 몸이 죽어 왕족에 태어나 큰 불사를 하려니 부디 문수대성은 큰 가피를 내리소서" 라는 말을 남기고는 길 옆 늪에 몸을 던져 자결을 하여 놀란 계파는 절로 가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걸 승되어 한양에 올라오게 되였는데 마침 궁궐 밖 유모와 함께 나들이하던 어린 공주를 만나게 되었다.

계파스님을 처음 보았는데도 공주는 여러 번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매달렸다.

왕궁에서 공주가 한 손을 쥔 채 태어나 큰 걱정 중이었는데 계파가 공주의 쥔 손을 만지니 신기하게 펴지며 손안에 '장육전' 이 란 세 글자가 쓰여 있었다.

이 신기한 이야기를 들은 숙종이 계파스님을 불러 공주 손을 펴 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정육 전 복원에 필요한 하사금 주면서 장육전을 각황전으로 이름을 명하였다.

장륙전의 많은 수난들을 생각하며 아픈 가슴으로 각황전을 바라보면 정면 7간 측면 5칸짜리 중층 팔각지붕 다포 집으로 밖에서 보기는 중층의 집이지만 내부는 툭 터진 통 충으로 15개의 높은 기둥이 기본 틀을 이루고 1층의 바깥기둥과 2층의 변주가 부가된 구조로 되어있다.

정면 가운데 3칸이 가장 넓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좁게 하였으며 측면은 5칸으로 주존 불을 가운데 모셔 윗면 2칸을 회랑처럼 분리되게 했다.

우물천장으로 주변을 경사지게 했으며 우리나라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이다.

2층 벽을 창호로 처리해 내부의 조명을 조절하고 있으며 복잡한 공포구조가 처마 밑을 채워 아주 아름답게 만든 미술사적 건물로 앞에 서있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국보 12호인 석등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화강암으로 만든 국보 12호 석등

6.3m의 화강암으로 만든 석등은 8각형의 하대석 위에 장고형의 간주 석을 얹고 중대석을 8각형으로 만들어 네 개의 창문을 달려있다.

옥개석을 8각으로 전각에 8개의 귀꽃을 달은 아름다움이 있는 우담발화의 불국의 꽃으로 승하시킨 환상의 석등이다.

나는 한참 석등에 매료되어 서있다 창건주이신 연기조사의 효심이 있는 효대로 올랐다.

각황 전을 뒤로 하여 오르는 계단이 108계단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불사리 73과를 모셔와 연기조사의 공덕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리기 위하여 국보 35호인 불사리 공양탑 4사자 3층 석탑을 만들었다한다.

이 탑은 중기 단을 갖춘 삼층석탑의 기본형을 따르고 있다. 3층 기단에 해당되는 부분에 독립된 4마리의 사자를 각 귀퉁이에 앉히고 그 대각선 중앙에 합장한 스님 상이 앞에 석등을 바라보고 서있다. 이 석등은 길쭉한 네모의 배례 석을 놓고 화사석을 받치는 기둥 3개안에 한쪽 무릎을 꼽고 공양하는 모습의 인물상을 조각해 놓았다. 이는 차를 공양하는 모습인데 석등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스님이고 4사자 석탑 안의 스님 상은 연기조사의 어머니이라 한다.

효심이 깊었던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공양하는 자신의 모습을 석등 형태로 조각하도록 하였다. 이는 후세의 우리에게 효에 대한 정신을 일깨워 주는 근본 이다.

석탑을 높게 만든 하층기단 중간 한 면에 각 세구의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 첫 인상을 양각하여 놓았으며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며 꽃을 바치는 각 가지 모습이 불국의 세계이다. 탑 안의 4사자들은 희·로·애·락. 모습으로 연상 되여 윤회를 생각하게 한다.

지혜가 있고 이치가 있는 아름다운 지리산, 운해가 오가며 산사의 목탁소리 화엄대가람 생명의 소리 되어 온 누리에 퍼진다.

그 진리를 보호 하듯 새털구름이 경내에 깔리며 불국 길 하얀 다리 백운교를 만들어 놓는다.

1시부터 시계방향으로 천불전, 각황전과 석등, 지리산 계곡, 대웅전. 원안은 4사자 3층 석탑. 원통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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