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도, 나라도 잘 넘어가야…
장마도, 나라도 잘 넘어가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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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교의 방아다리에서 쓴 편지
김 익 교 <전 언론인>

요즘은 아침 저녁으로 논·밭둑에 풀깎는 예초기 소리가 동네를 떠나지 않습니다.

몇번 온 비로 풀들이 부쩍부쩍 자라기 때문이지요. 새벽에 일어나 돌아보다 약초포지든 밭이든간에 주저 앉으면 뽑습니다. 이상하게 다른 일 하다가도 풀만 손에 대면 몇시간이고 해야 됩니다. 어제도 4시간, 오늘도 이식하다가 오전내내 뽑고 또 뽑았습니다. 풀 뽑는 것도 중독이 되는지….

어제가 6월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날입니다. 이맘때만 되면 아버지 생각이 자꾸만 납니다. 3년전 9월에 세상을 뜨셨는데도 더욱 그립고 보고싶은 것은 이 전쟁에 참전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때면 늘 말씀하셨습니다. "참 많이들 죽었어 하루가 지나면 반이 없어지고 사흘이면 몇명 안남아 다시 편성되고…", "어디가 어딘 줄 알아 그저 밤중에 차로 실어다 놓고는 싸우라는 거지, 그때도 개망초가 하얗게 피었었지".

갓 시집온 아내를 두고 찰나에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전장을 돌며 얼마나 가족들이 보고 싶고, 얼마나 집에 오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서는 수십년을 전쟁과 개망초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한번도 집에 오고 싶었다는 말씀을 안하셨습니다.

풀을 뽑다가도 개망초에는 손이 안갑니다. 무리지은 하얀꽃에서 아버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개망초가 많은가 봅니다. 이달 지나면 뽑아야지요.

지난 일요일에 감자를 캤습니다. 장마 가기 전에 캐라는 이웃들의 독촉에 아내와 서울 동생들도 주고, 친구들도 주려고 명단작성까지 하면서 손목이 저리도록 호미질을 했습니다. 담아보니 20 상자로 열 상자나 됐습니다. 내친김에 곧바로 한 상자를 싣고 시내 어머니를 찾았지요. 제일먼저 드리려구요. 아들이 농사지은 감자를 보시고는 "이걸 심구 캐느라 고생 많았다"며 "내년부터는 아무 것도 심지 말구 편하게 지내라"고 몇번이고 당부를 하십니다. 그리고 어제 감자를 "이웃에 다 팔았으니 빨리 갖고 나오라"는 전화를 하셨습니다. "우리 아들이 농사지은 거라"며 대여섯개씩 봉지에 담아 이웃들에게 돌리시고 주문()을 받으신 겁니다.

주문을 받으셨다니 안 갈 수도 없고…. 어쨌든 아내와 둘이 감자장사 제대로 했습니다. 어머니가 알려주신 아홉 집에 한 상자씩 배달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아내와 한걱정을 했습니다. 누구도 주고, 누구도 준다고 작성한 명단이 무효가 됐으니 말입니다.

그 명단에는 어렵게 구한 씨감자를 보내준 농협후배도 있는데…. 이래저래 부도입니다.

농촌에 와서 고구마 부도, 감자·고추·콩 부도 등 부도 참 많이 냅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주려고 마음만 먹었다가 못준 것이니 피해가 있는 부도는 아니지요.

날씨도 뒤숭숭한 세상을 닮아가는지 장마가 이상하게 지나갑니다. 이대로 끝나려는 건지, 몰았다가 한꺼번에 퍼부으려고 그러는지 그저 잘 넘어 가기를 바라야겠습니다. 대한민국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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