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신교인 공직자의 발언을 보고
한 개신교인 공직자의 발언을 보고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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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태 종 <삶터교회 담임목사>

민심이 촛불로 타오르며 뜨거워질 무렵, 그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할 수 있는 갖가지 정부 쪽의 대응과 발언이 있었습니다. 서툰 정치에 인식의 부재를 보면서 '어쩌면 저다지도 미련스러울까', '미련한 데는 재빠르고, 슬기로운 일에는 아둔하기만 한 정치'라는 생각으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날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가운데 거리는 연일 그런 서툰 정치에 답답해진 사람들로 가득가득 메워지곤 했습니다.

그 가운데 내 얼굴을 화끈하게 달아오르게 한 말이 '사탄'이라는 용어였습니다. 워낙 말의 뜻이 거칠고 파괴력을 지닌 것이어서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그래서 특정한 상황이 아니면 쓰이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되어 있었고, 최근에는 그 사용빈도가 현저히 낮아진 말인데, 그것이 한 개신교인 공직자에 의해 국민을 대상으로 하여 사용되었다는 것은 단지 한마디의 말로 그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달아오른 얼굴뿐만 아니라, 가슴까지 뜨끔했습니다. 물론 나는 아직 상황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하여 그런 말을 해 본 일이 없고, 그런 말을 쓸 만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꺼려 기피하는 말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안 했다고 해서 그것이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님을 모를 정도로 낯이 두껍지는 못하고, 그래서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곳은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크게 천주교와 개신교로 나뉘는데, 그중 개신교가 내가 몸담고 있는 곳, 그 개신교의 인식을 대표한다고 해도 괜찮을 그 공직자는 전에도 내가 두려워하고 있는 한반도대운하를 서슴없이 주장하던 사람이었는데, 그 말을 함으로써 개신교의 세계관의 파괴적 속성과 편협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사실이 그 부끄러움의 원인,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가 드러났을 때와 같은 수치심은 아직까지도 말끔하게 씻어지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세계에서도 그 말은 사람을 대상으로 쓰였다기보다는 상황을 대상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때로 그런 말을 사람을 지칭해서 쓰인 예도 없지는 않으나 그런 용어를 쓴 사람은 천박한 사고를 하는 무지한 사람이라는 것은 다들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게 지칭된 사람을 깎아내리는 목전의 결과를 얻었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렇게 말한 사람의 문제라는 것 또한 틀림없는 일, 그리하여 자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기 위해 쓰인 일을 포함해서 그런 용어 자체에 대해 시대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이미 받고 있다는 것이 내 시각입니다.

그런데 이 철 지난 마당에 다시 이 말이 쓰였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이나, 그런 사람을 가까이에 둔 정권을 나무라거나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일이 결국 자신을 거칠고 메마르게 한다는 것, 그 소속된 개신교와 정권의 척박함을 드러낸다는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벅찬 일이라는 것, 그런 말을 하는 동안 나 또한 거칠어진다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은 종교적 용어가 그 종교의 정신을 흠집내거나 허물어뜨리지 않도록 자신을 다듬는 것이 종교적 태도라는 것, 그것이 종교뿐 아니라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집단이나 개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는 것,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이 스스로를 다듬고, 또한 내가 소속되어 있는 기독교를 미래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일로도 너무 바쁘다는 사실, 이것을 헤아리는 이들이 하나라도 늘어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 거칠고 위험한 말을 내 안에서 비로소 녹여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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