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와 등산 Q&A
신혼부부와 등산 Q&A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2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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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량의 산&삶 이야기
한 규 량 <충주대 노인보건복지과 교수>


Q 결혼준비는 다 됐나.
A 네.

Q 어떻게.
A 혼수 장만 끝나고 웨딩촬영 마쳤어요.

Q 그럼 신혼여행은.
A 북해도로요. 비행기표 예약했어요.

7년전에 주례를 부탁하러온 제자 부부와의 대화 중 일부이다. 졸업 후 2년 연애 끝에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제자가 신랑감을 데리고 온 것이다. 제자의 신랑감이니 사위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맘에 들지 않아 위의 대화처럼 형식적인 질문만 몇 마디 하고 보내려 했으나 주례를 부탁하는 바람에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주례를" 하는 시선과 더불어 40대 중반인 어린()나이에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그리 젊지 않은 새 부부에게 무슨 주례를 설 것인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랑감이 맘에 들지 않아 더욱 그러했다. 애제자였기에 하는 수 없이 조건부 승낙을 했다.

조건은 다름 아닌 결혼을 위한 통과 시험을 본 후 내가 원하는 합격점수에 도달하면 다음 단계로 예비부부를 위한 강의를 두 시간 듣기로 한 것이다. 처음 해보는 주례이기에 내가 주례를 서면 그들의 앞날까지 후견인으로서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막연한 책무감에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고 이런 어려운 난관 없이 쉽게 결혼식만 올린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싶어서 시험지를 통한 일종의 서약서를 받아냈다.

흰색 B4용지 두 장씩을 주고 문제를 불러 주었다. ①왜 상대와 결혼할 생각을 했는가 ②자신의 장단점 20가지씩 적기 ③ 상대방(배우자감)의 장단점 20가지씩 적기 ④이혼을 하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20가지씩 적기였다. 이렇게 4문제를 불러주고 각각 다른 곳에서 시험지를 적게 하였다. 제자는 나름대로 열심히 적어내려 가더니 4번 문제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며 다시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신랑감이 문제였다. 한줄 쓰고 한숨 내쉬고 볼펜 돌리고 영 맘에 들지 않더니 역시 수험태도도 불손하였다. 어떻게 견뎌낼까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담배 한 대 물고 오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는지 잠깐 나갔다 오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수험도중 퇴실은 시험포기인 것이니 당연히 안된다고 거절했다.

얼굴은 긴장과 진땀이 역력했다. 드디어 긴 한숨 끝에 "이렇게까지 해서 장가갈 필요 있나"라는 중얼거림이 작게 들려왔다. 그것을 캐치한 감독관인 내가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주례만 바꾸면 되니 고생 말고 돌아가게"했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더니 2시간 남짓 시험지에 매달렸다. 시험이 끝나고 합격점을 주어 결국 주례 승낙을 하고 말았다. 물론 2시간 강의까지 했다. 결혼식날 시험결과를 발표하고 ③번 문제의 답을 읽어주면서 주례사를 시작했다. 식장 안은 웃음바다가 됐다. 결혼서약서 대신 답안지를 코팅해서 상대방에게 전달했다.

그로부터 2년 후 신랑이 찾아와 넙죽 절을 했다. "저희들 그동안 많이 싸웠어요. 이혼지경까지 갈 뻔 했어요. 그 시험만 안 봤어도"라고 하며 이제야 시험의 의도를 알았다고 했다.

초보 등산은 곧 신혼부부 인생을 대변해준다.

Q 등산준비는 다 됐나.
A 네.

Q 어떻게.
A 등산화, 등산복 준비하고 다른 장비들 배낭에 넣었어요.

신혼을 꿈꾸는 사람이 살림장만하고 웨딩촬영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듯 등산 역시 장비장만하고 폼 나게 정상에 올라 증명사진 찍으면 나는 성공했노라 생각할지 모른다.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등산의 목적은 아니다. 정복해 태극기를 꽂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산이 나를 불러들인 것이니 하심(下心)하는 길이다. 결혼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결혼 이후 삶이 중요하듯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한 일이다. 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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