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친구 맞습니까?
두 사람 친구 맞습니까?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6.13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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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영동>

캠프 데이비드에서 어깨동무를 하며 우애를 과시했던 부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과연 친구인가. 계속되는 '촛불정국'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드는 의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전부터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화급한 외교사안으로 꼽았다. 취임후 미국 방문을 서둘렀고 정상회담 직전에 타결된 쇠고기협상은 결과적으로 절묘한 타이밍이 한쪽에는 족쇄가 돼버렸지만 두 사람을 극적으로 밀착시킨 동인이 됐다.

협상은 부시의 입지를 높였지만 이 대통령에게는 악몽의 전주였다. 해명과 사과와 대안들이 숱하게 제시됐지만 촛불시위는 정권의 명운이 걸릴 정도로 심각한 수위를 향해 치닫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 100일만에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며 탄핵까지 거론되는 절대위기에 빠졌지만 부시는 그의 곤경에 대해 침묵 내지는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관포지교' 등 친구간 의리를 존중하는 사자성어를 꼽는 데도 10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인 우리네 정서로 보면 부시는 의리와는 담쌓고 사는 인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우리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보다는 미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국민과 힘겨운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데 부시는 강건너 불 구경하는 식이다. 차라리 'FTA 재협상'을 외치는 민주당 대통령후보 오바마가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쇠고기고시를 미 대통령선거까지 미루며 버티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농식품부차관 등 정부 협상대표단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이 워싱턴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양이다. 절박한 우리네 대표단과 달리 미 정부의 반응들은 썰렁한 것으로 전해졌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와 관련해 민간 수출입업자간 추진중인 협상에 대해서는 상업적 거래로 선을 긋고 정부개입은 피하려는 입장이다. 쇠고기사태에 대한 국무부의 공식논평도 '한국 국내문제로 한국 안에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수준이다.

우리 고위 공직자들과 국회의원들이 미국의 정·관가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며 사정하는 모습들은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에게서는 '한국 정부가 어려움에 처해있는 만큼 방문단을 정중하게 예우하고 합리적인 방안마련을 위해 최대한 공조하라'는 의례적인 수사조차도 없다. 오히려 침묵의 이면에는 만약 쇠고기협상을 백지화하면 한국의 주력 수출종목인 휴대전화, 자동차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테니 알아서 하라는 엄포가 담겨있는 듯한 느낌이다.

입장이 바뀌어 부시가 똑같은 궁지에 몰리고 그 키를 우리가 쥐고 있다면 어떤 상황이 될까. 곧바로 통상부서에 청와대의 훈령 한장이 떨어지지 않을까. 명분은 이런 것일 게다. '우방인 미 정부가 소신껏 우리와 협상을 끝냈지만 국민의 절대적인 반대에 봉착한 만큼 역시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로서 이같은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고 미 국민의 시위가 반한 무드로 흐를 경우 양국관계에 악영향이 우려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국민들도 자존심이야 다소 상하겠지만 국본이 흔들릴 정도인 상대국가의 상황도 상황인 만큼 촛불 들고 나와서 재협상은 안된다고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부시와 가장 친했던 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는 유럽 각국과 국내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벌인 이라크전에 적극 참전하며 부시와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지만 그가 국민과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얻은 것은 '부시의 애완견'이라는 굴욕적인 별칭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이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함께 골프 카트를 몰며 나눈 우애는 '짝사랑'처럼 일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수렁에 빠진 친구를 구경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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