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문백전선 이상있다
235.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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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550>
글 리징 이 상 훈

"내가 이번 한번만 모른척 할테니 단단히 경고하세요"

"어머! 그, 그렇다면---."

수신은 장산의 말에 조금 충격을 받았는지 안색이 돌변하며 갑자기 말을 더듬거렸다.

'옳지! 됐다!'

장산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준비해둔 다음 말을 천천히 이어나갔다.

"왕비님께서는 마음이 조금 괴로우시더라도 성남 왕자님의 좋은 인상에 행여 흠이 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자제하시는 편이 좋을 줄로 압니다. 이것은 앞으로 왕도(王道) 수업을 받게 될 성남 왕자님께 득(得)이 될 것이니까요."

"하, 하지만. 우리 아들이 '통돼지' 운운해가며 당해버린 망신은 어찌하고요"

"작게 당해버린 망신에 대해 신경을 자꾸 쓰다보면 오히려 더 큰 망신을 부르는 수가 있사옵니다. 왕자님의 후덕한 인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조심을 하셔야지요."

"음음음."

수신은 장산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어 보다가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이렇게 내뱉듯이 말했다.

"알았어요. 자기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는데 이 세상 어느 어미가 그걸 마다하겠어요 내가 이번 딱 한 번만 모른 척 그냥 넘어가 줄 것이니 호위무관께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 아이를 치사하게 뒷구멍에서 통돼지 운운해가며 깔보고 욕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따끔하게 야단쳐 주세요. 특히 자기 주제도 모르고 주둥아리를 함부로 나불거리는 염치 대신의 마누라에게 단단히 경고를 주시고."

"잘 생각하셨습니다, 왕비님!"

장산은 크게 안도를 하며 수신에게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어찌 되었든 수신 왕비가 스스로 참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이번 일은 적당히 무마되어 끝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수신은 속이 좁은 탓인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수신은 신하들이 모여 서있는 조회(朝會) 때 짐짓 이상스런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외쳤다.

"염치 대신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혹시 오늘 안 나오셨는가"

왕비의 말에 신하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곧이어 조그

만 염치 대신은 조그만 자기 몸을 어쩔 수 없이 가리고 있던 사람들의 틈에서 살짝 빠져나오며 답했다.

"저, 여기 있사옵니다."

"어머! 오시긴 오셨네"

수신 왕비는 민망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염치 대신을 약간 거만스럽게 위아래로 쑥 한 번 훑어보았다.

염치 대신은 그러는 수신을 보고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 몸이 다른 사람들보다 작아서 쉽게 가려진다는 걸 모르는 바도 아닐 텐데.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갑자기 왜 하는 거지'

본의 아니게 망신을 당해버린 꼴이 된 염치는 그날 밤 서둘러 장산을 찾아갔다. 염치는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장산에게 물었다.

"이봐! 요즘 왕비님의 신변에 무슨 변화라도 생겼는가"

그러자 장산은 한숨을 길게 몰아내 쉬며 천천히 입을 떼었다.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만 일이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대신께서는 조만간 무슨 결심을 내리셔야만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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