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잔칫상 차리지 못한 청와대
100일 잔칫상 차리지 못한 청와대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6.04 2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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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장 <천안>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은 청와대가 잔칫집이 아니라 초상집 분위기다.

보통 때라면 자축연이라도 해야 할 의미있는 기념일이지만 이날 대통령은 오전 국무회의 때 대국민 메시지조차 발표하지 못했다. 100일 잔치가 보통 잔치던가. 돌이야 해마다 돌아오지만 100일은 단 한번밖에 없다는 그런 날 아닌가.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크게 몸을 낮췄다고 한다. 국무위원들에게 "원래 자축을 해야하는 날이지만 자성을 해야 할 점이 많다. 국민의 눈높이를 우리가 잘 몰랐던 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우리'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각료, 참모들과 '함께' 잘못해 왔다는 점을 인정한 셈이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각, 청와대 바로 옆에 위치한 서울 청운동사무소 앞. 대통령이 취임 100일 잔치를 하지 않아 서운했던 것일까. YMCA 등 청소년단체들이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고 대통령의 취임 100일 동안을 평가하는 시험점수를 공개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 이어 대통령을 등장시켜 '내가 100일 동안 잘한 것은 무엇일까요'란 시험문제와 성적표를 공개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험 결과는 빵점. 시험문제가 5가지였는데 1.영어몰입교육, 2.일제고사, 3.학교자율화, 4.미친 소 수입, 5.청소년 탄압 등에 대한 청소년단체들의 평가였다. 이들은 특히 "학교자율화조치 등 경쟁을 촉발하는 교육정책들 때문에 청소년들의 삶이 망가졌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청소년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같은 날 오후 2시30분 대전시 대흥동 YWCA강당. 이곳에선 이 대통령이 시민단체들로부터 상을 받았다. 상의 이름은 '민주시민의식 고취상'. 시민들에게 '촛불시위까지 나서도록' 민주의식을 고취시켜줘서 대통령에게 고맙다고 수여하는 상이라 한다. 주최측은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을 전면 반대하는 대전시민대책회의'. 쇠고기 파동으로 급조된 이 단체는 퍼포먼스로 진행된 시상식에서 미국소로 분장한 회원에게 대통령 대신 상을 전달했다.

대통령 취임 100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아닌 대통령과 정부를 질책하는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참담하기 짝이 없다.

YTN이 이날 대통령의 국정수행과 관련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했는가.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사상 최악인 17.1%로 나타났다. 국민 10명중 2명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취임초 70∼80%를 상회했던 지지율이 연일 곤두박질이다.

증권시장 같으면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주가 급락때 주식거래를 일시 정지시켜 시장을 진정시키는 제도)라도 발동해야 할 지경이다.

100일을 맞이하고도 잔칫상을 차리지 못한 청와대의 속사정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러나 낙담할 일만은 아니다. 여론조사결과를 차분히 들여다 보면 만회할 수 있는 길도 있다.

앞서 2일 발표된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가 잘 나와 있다. 그 첫째가 국민의견수렴 부족이며 다음이 물가정책 잘못, 밀어붙이기식 추진, 쇠고기 협상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은 3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의 눈높이를 몰랐다. 자성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분명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구태여 새로 문제를 풀려고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진정성을 갖고 고민하고 해결해가면 된다.

쇠고기 문제와 별개로 경제가 비상이다. 하루 빨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길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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