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뱀을 물고 소가 육식을 했을때
개구리가 뱀을 물고 소가 육식을 했을때
  • 김성식 기자
  • 승인 2008.06.03 2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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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산야를 다니다 보면 돌연 믿기지 않는 '실제 상황'을 만나게 된다. 황소개구리도 아닌 토종 개구리가 저보다 큰 무자치를 물고 발버둥치고 있거나 물고기인 동사리가 살모사와 입을 마주 문채 나뒹굴고 있는 모습, 또 유혈목이가 천적인 백로와 왜가리의 목을 감고 사생결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 등 가히 기적이라 할만큼 황당한 사건이 생태계서 벌어지곤 한다.

어찌보면 먹잇감(피식자)의 반란 같기도 하고 약자의 최후 발악 같기도 한 이광경. 하지만 포식자의 입장에선 그들 지위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치욕의 순간이다. 어쨌거나 서로가 생과 사를 걸고 벌이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싸움을 보노라면 이 세상 생명체들이 얼마나 자신의 생명에 집착하는 지를 다시금 생각케 한다.

그렇다면 이들 싸움은 어떻게 끝날까. 대부분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포식자가 이기는 경우가 많으나 간혹 양쪽 모두가 죽고 마는 극한상황까지 벌어진다. 반면 약자인 피식자가 이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설령 이긴다해도 목숨만 부지할 뿐 상대를 집어삼키진 못한다.

비슷한 일이 곤충세계서도 일어난다. 생태계내에서 강자인 말벌이 꿀벌을 공격했다가 화가 난 꿀벌들의 역습으로 졸지에 불귀의 객이 되는 경우가 그 예다. 이 경우도 말벌은 죽지만 타격은 꿀벌들에게도 만만찮다. 강한 턱과 이빨을 가진 말벌이 순순히 당할 리 없다. 필사적으로 대항한다. 그 결과 싸움이 끝난 자리엔 말벌의 사체 외에도 꿀벌의 사체 또한 부지기수다.

생태계내 먹잇감의 하극상()은 이렇듯 희생을 가져온다. 아니 그 희생은 이미 예견된 결과다. 생태계에는 그만큼 비정한 먹이사슬의 법칙이 있다. 피식자는 포식자의 섭식활동에 결과적으로 순응토록 돼 있다. 다만 쉽사리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생존경쟁을 벌이고 필사의 저항을 할 뿐이다. 그 생존경쟁과 저항은 양쪽 모두를 진화하게 하는 모티브가 된다. 이것이 생태계다.

만일 동물계의 먹이사슬에 인간이 끼어들어 한 동물의 먹이체계를 뒤바꿔 놓으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초식성 동물에게 육식성 먹이를 먹도록 강제한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경우가 다 그런건 아니지만 지금 우린 그 엄청난 결과를 '실제 상황'으로 목격하고 있다. 다름아닌 광우병 쇠고기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이 그 답을 던져주고 있다.

생각해 보자. 이미 알려진 바대로 광우병의 발병 원인은 근본적으로 소의 먹이(사료)에 있다. 20여년 전부터 영국 등지서 젖소의 우유 생산량을 늘리고 비육우를 빨리 살 찌우기 위해 양과 소의 장기, 뼈, 살코기 등을 사료원료로 이용한 게 단초가 된 것이다.

초식성인 소에게 단백질을 공급한답시고 육식성 사료를 섞어 먹인 것이 화근이 돼 결국 광우병이란 해괴망칙한 병을 낳고 말았다.

그결과 전 세계는 광우병의 공포에 휩싸이게 됐고 우린 지금 그 병의 위험성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문제로 전국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 촛불시위의 피킷마다 '미친소=미친정부'라며 아우성이다. 이젠 해외 동포들까지 나서 우리의 '미친 정국'을 우려하고 있다.

자고로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하지 말라 했다. 개도 먹을땐 건드리지도 말라 했잖은가. 그만큼 먹을거리는 인간이나 동물에게 있어 중요하다는 얘기다. 장난도 말고 건드리지도 말라는 건 곧 신뢰성과 안전성을 염두에 둔 말이다.

제 아무리 약자인 피식자라도 열 받고 궁지에 몰리면 반격하는 게 자연계다. 인간세계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자신의 먹을거리가 누군가에 의해, 그리고 억지에 의해 신뢰성과 안정성을 잃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건 생존의 문제다. 그 어찌 분노가 극에 달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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