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충남 연기군 봉산동 향나무
4. 충남 연기군 봉산동 향나무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05.3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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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450년 세월이 풍겨내는 진중한 향기

천연기념물 제 321호


충남 연기군의 천연기념물 '봉산동 향나무'는 약 450년 이상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향나무에 비해 높이가 3가량밖에 안되지만 옆으로 퍼져나간 넓이는 좌우 각각 11M 이상에 달한다.

다른 천연기념물과는 달리 강화 최씨 집안에 심어진 이 나무는 위에서 바라보면 초록잎이 대지를 감싼 듯 넉넉한 품을 드러내고, 아래에서 바라보면 용트림하듯 서 있는 모습에서 오랜 풍상을 견뎌온 단호함도 느껴진다.

사람마다 품은 향기가 다르듯, 나무도 나무만의 향기를 지니고 살아간다. 향없는 나무야 없겠지만 꽃으로 향을 내는 나무가 있는가하면, 나무 스스로 향을 내는 나무가 있다. 바로 향나무다.

이 나무는 청정한 향 때문에 서원이나 궁궐에 심어져 귀한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귀신을 쫒는 벽사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 제례용 향으로 사용하기 위해 베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생활 속에서 귀함과 베어짐을 겪어야 했던 향나무는 이로 인해 천년을 산다는 노거수로써의 명성을 잇고 있는 나무는 흔치 않다.

비록 천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충남 연기군에는 450여년의 풍상을 버티고 살아온 천연기념물 '봉산동 향나무'가 있다. 대부분의 천연기념물이 마을 공동체를 위한 버팀목이었다면 봉산동 향나무는 개인 소유로 강화 최씨 집안과 함께 살아온 내력을 지녔다.

사랑방에 심겨져 관상수로의 역할을 해온 이 향나무는 울안에서 자란 탓인지 45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키는 3정도밖에 안 된다. 대신 옆으로 자란 가지들은 푸르게 푸르게 뻗어나가 기둥으로 받쳐야 할 만큼 퍼져있다.

조선 중종 때 부친 상을 당한 최중룡이 3년 시묘살이를 하면서 심은 이 나무는 강화 최씨 문중의 역사이기도 하다.

최봉락씨(75)는 "강화에서 큰 공을 세운 선조가 본관을 강화로 삼아살다가 조선 중종때 최완 선조가 서울서 낙향하여 연기군 봉산동에 정착하게 되었다"면서 "최완 할아버지가 죽자 그 아들 최중룡이 시묘살이하며 효성을 자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집안 정원에 심었던 나무"라며 집안과의 인연을 들려줬다.

그는 "이후 사회변하를 겪으면서도 자손들이 터를 지키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며 "옛 사랑방 앞에 심어져 있어 선조들이 글을 읽다 나무 아래서 쉬기도 하고, 집안의 큰일이 있을 때면 어르신들이 이곳에 모여 잔치도 벌이며 놀았던 곳"이라고 전했다.

양반집 정원에 심어져 선비의 글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을 향나무는 무엇보다도 줄기가 기기묘묘하다. 어른 키보다 약간 클 정도의 높이에 원줄기와 가지가 용트림하듯 서로 뒤엉키며 자라 용맹한 장수의 기운이 느껴진다.

여기에 갈빛 껍질이 결대로 갈라지며 벗겨져 각을 세운 꼿꼿한 시선도 드러낸다. 그런가하면 위에서 바라보면 초록잎이 대지를 감싼 듯 넉넉한 품을 드러내고, 아래에서 바라보면 용트림하듯 서 있는 모습에서 오랜 풍상을 견뎌온 단호함도 느껴진다.

반기민 충북생명의 숲 사무국장은 "나무는 어릴 때 어떻게 가꿔주는가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며 "향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옆으로 기어가면서 자라고, 나무 껍질이 벗겨지면서도 맨질거리는 느낌이 든다."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또 "대부분 향나무는 키가 20M가량 자라는데 꽃은 15년 정도 지나야 핀다"면서 "봉산동 향나무는 다른 향나무와 달리 키가 작지만 수형이 독특하면서도 예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개인 소유인 향나무를 천연기념물로 등록하며 벌어진 일화는 이 나무가 주는 수형의 특징을 그대로 전해준다. 최봉락씨는 "수형도 독특하고 죽은 것 같은 나무가 싹을 틔우자 1982년 집안에서 천연기념물 지정 신청서를 내게 됐다"면서 "당시 신청서에 향나무 사진을 찍어 보내도록 되어 있었는데 담당자가 왜 분재를 천연기념물로 신청하냐며 항의해 오기도 했다"며 웃지못할 해프닝을 들려줬다.

이어 "다른 나무들과 달리 제를 지내거나 금줄을 치지 않는다"면서 "전부터 나무와 관련해 낙엽이 지면 집안에 우환이 있다는 속설도 전해지지만 선조들이 그저 나무가 좋아 관상하며 즐겨온 것으로 나무가 잘자라도록 주변정리와 잡초제거 등의 관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곳곳이 무너져내려 사랑방 흔적은 찾을 수 없었지만 향나무와 함께 만들어졌다는 연못에서 단아한 모습으로 글읽던 선비가 그려진다.


비틀려 자라면서도 기개를 잃지 않고 서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선비는 입신양명을 꿈꾸었을 것이고, 가지를 펼치듯 이상을 펼칠 세상을 그리기도 했을 것이다. 이제 떠난 이 만날 수 없지만 몇 대를 거쳐오는 동안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흥함과 이울어짐도 묵묵히 지켜보았을 나무는 주인없이 허물어진 담장을 마주한 채 오봉산 하늘을 떠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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