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 고마워해야 할 것
5월에 고마워해야 할 것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30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교육 칼럼
오 희 진 <환경·생명지키는 교사모임 회장>

5월의 들판에 선다. 그 풍광을 바라보다가 '치킨런'이라는 영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클레이메이션(찰흙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화는 영국의 한 양계장에서 벌어지는 닭들의 탈출기이다. 양계장 주인을 위해 알을 낳아야 하고 알을 낳지 못하면 죽임을 당해야하는 닭들의 운명.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꺼번에 이윤을 내기위해 치킨파이 기계를 들여온 주인에게 닭들의 생명은 바람 앞에 등불이 된다.

그 닭들 중에 진저라는 암탉과 나중에 들어온 록키라는 수탉이 있다. 닭들은 록키에게서 나는 법을 배우지만 양계장의 닭에게 날개는 허상이다. 록키의 날기가 처음부터 사기였음을 아는 데는 진실과의 갈등이 필연적이다.

진저는 벌써부터 이런 닭들의 운명에 탈출이라는 생명의 내기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닭들은 자신의 퇴화한 날개 대신 비행기를 만들어 모두 함께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난다. 주인이 뿌려 준 닭모이에 미친 듯이 고개를 땅에 박는 닭들. 주인의 설교대로 '알만 잘 낳으면 되잖아' 하고 되묻는 닭들.

서커스 닭 록키의 허영심에 물들어 거짓과 진실을 혼동하는 닭들. 그리고 그런 닭들의 자학적 세계로부터 해방을 향한 끊임없는 열망을 결국 실현하는 암탉 진저. 그 우화들은 이 땅의 정치적 상상력을 북돋운다.

모내기철이다. 겨우내 버려둔 땅에 농사가 시작되었다. 물론 예전과 달리 들판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기는 쉽지 않다. 대대로 경작하던 오래된 논밭에 사람의 세대가 이어지지 못하고 있기에 이 너른들에 농부의 출현은 때로 놀랍다. 그래서 사람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된것이 이상하지 않다. 쟁기를 끄는 소를 부리는 농부가 내는 소리 한바탕에 봄기운이 사방에 퍼지던 시절은 이제 상상의 영역이 되었다.

대신 새소리 바람소리마저 삼키는 굉음을 내는 트랙터가 논밭을 갈고 농사일의 주체가 되었다. 기계화된 농사를 짓게 된 것이 기술과 경제의 덕택이겠지만 5월의 들판은 아직은 자연으로 남아 내게 와서 보라 한다.

벌써 모내기가 끝난 논배미들이 들판의 반을 넘은 듯 보인다. 일정한 간격으로 심겨져서 물에 잠긴 애기모들이 불어대는 바람에도 여린 몸을 제법 가누고 있다. 한쪽 논에 조성된 못자리판에 애기모들이 파랗게 밀식되어 솟았다. 보온을 위해 덮었던 부직포를 벗겨낸 못자리의 애기모들은 더 할 수 없이 깨끗한 초록의 생명을 드러냈다.

저것들이 가래 써레질 한 번에 이룬 트랙터 삽날로 삶아놓은 논에 곧 모내기 될 것이다. 물이 가득한 그 논배미마다 하늘이 푸르게 들어와 땅에 부는 바람으로 구름을 흘려보낸다. 거기 아침이면 백로 황로 조용히 서서 그 구름 사이로 먹이를 찾는다. 저녁이면 언제 집을 삼았는지 개구리들이 점점 소리를 높여 어둠을 지킨다. 다시 아침이 되고 농부의 이앙기에 실린 애기모들이 그 논배미 푸른 하늘에 점점이 심겨진다. 보라, 그냥 땅이 아니라 하늘을 담은 저 모내기 논에서 애기모들이 애지중지 얼마나 푸르게 자라는지를. 뜬금없는 이 두 장면에서의 겹침은 결론부터 말하면 '철조망 넘어 닭들'이며 '하늘 담은 논에 크는 애기모들'이다. 무엇이 그렇게 그들을 경계선 밖으로 움직였을까. 그것은 '우리가 교육과 실천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더 나아가 우리는 아무런 한계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게'(만들어진 신) 되는때에 그렇게 될 수 있다. 그렇다. 5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청소년들이 먼저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찢고 제 영혼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음을 고마워하자. 그것은 훅 들이 쉬기만 하면 안에 들어오는 공중에 미만한 5월의 아카시 향기처럼 예사롭지만 그것을 제 영혼으로 숨쉬는 일은 특별나기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