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잃은 해바라기 시장·군수들
중심 잃은 해바라기 시장·군수들
  • 최윤호 기자
  • 승인 2008.05.27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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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최 윤 호 부장 <충주>

충북도내 일부 자치단체장들이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농업정책을 지지한다고 서명해 농심에 피멍을 들게 했다.

정 장관 농업정책 지지건의서에 서명한 단체장은 6명이다. 농민들의 반발이 현실화되자 일부 줏대없는 단체장은 농민들이 보는 앞에서 문건을 소각하기도 했다. 농촌지역 시장·군수들의 이같은 행동은 농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 따르면 농림부는 정운천 장관 해임을 막기 위해 농촌 지자체에 20억원의 예산지원을 미끼로 지자체장들로부터 정 장관 해임건의 반대 서명을 받았다. 강 의원은 "만일 농림수산식품부가 장관 해임을 반대하는 조건으로 예산지원을 약속하는 거래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문제"라며 "지역경제가 어려운 농촌지역 지자체에 예산이라는 미끼를 활용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농림수산식품부의 작태는 국민과 농민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 장관 해임건의 반대에 서명한 시장·군수는 충북 6개 시장·군수를 포함해 모두 45명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억원에 눈먼 시장·군수들은 지역 농민들의 고통을 망각한 채 사실상 한·미 쇠고기협상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한·미 쇠고기협상의 잘잘못에 대한 논의는 뒤로 하더라도 이들이 진정 농촌지역 시장·군수들인지 의심스럽다.

농림부도 자신들의 예산 집행권을 휘두를 수 있는 농촌지역을 '타깃'으로 삼았을 것이다.

문제가 확산되자 해당 시장·군수들은 "농림부의 농정에 대해 지지한 것일뿐 쇠고기 협상안에 찬성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누가 그 말을 믿을 것인가. 뻔한 정부의 의도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또 얼렁뚱땅 둘러대고 있는 꼴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 예산만 바라보고 있는 지방 소도시의 궁핍함을 이용한 농림부도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런 '미끼'에 춤추는 시장·군수들은 큰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지난해 정부의 권고로 팀제를 시행했던 제천시는 팀제 도입으로 많은 인센티브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새정부가 또 다른 조직개편을 권고하자 제천시는 팀제 시행 1년만에 다시 조직을 바꾸려 하고 있다. 정부 권고에 잘 따른 제천시는 또 인센티브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이지만 정부 입장에 따라 멋대로 바뀌는 조직에 공무원들과 시민들의 혼란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과거 관선 시장·군수시절에는 정부의 말 한마디면 모든 시·군의 통제가 쉬웠지만 지방자치가 부활된 이후 '돈'이 정부의 유일한 통제수단이 돼 버렸다. 정부의 통치수단이 돈이라면 정치권의 통제수단은 '공천'인 셈인 것이다.

통합민주당 등 야 3당이 발의한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은 지난 23일 17대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표결까지 이뤄졌으나 재적의원 291명중 149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40, 반대 5, 무효 2, 기권 2표로 부결됐다. 이런 결과가 정부의 미끼에 부화뇌동한 시장·군수들의 공만은 아닐 것이다.

"서명 한번에 20억원 벌었다"고 자랑하는 시장·군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국가적 명운이 걸린 한·미 쇠고기협상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한 입장표명을 지나치게 가볍게 여긴 것은 아닌지 되새겨 봐야 한다.

지역 농업에 20억원을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이 된 시점에 이미 지역 낙농가는 모두 파산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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