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필 무렵의 산과 들
찔레꽃 필 무렵의 산과 들
  • 김성식 기자
  • 승인 2008.05.27 22: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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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찔레꽃 필 무렵이면 어김없이 흥얼거리게 되는 찔레꽃 노래다. 원곡은 일제 말기인 1942년 가수 백난아가 처음 불렀는데 훗날 이미자가 가사일부를 바꿔 불러 더욱 유명해진 국민가요다. 뜬금없이 찔레꽃 타령을 하는 이유는 요즘이 바로 찔레꽃 피는 철이기 때문이다. 아까시꽃이 막 지고나면 덤불위로 앙증맞은 얼굴을 내미는 찔레꽃. 그 찔레꽃이 필 때면 한 손엔 찔레순을 또 한손엔 삘기를 뽑아들고 산과 들로 내달리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이 무렵이면 버릇처럼 의문이 가는게 있다. 바로 찔레꽃의 색깔이다. 노랫가사엔 분명 찔레꽃이 붉게 핀다고 했는데 우리 주변에 피는 것은 거의 모두 희거나 흰색에 가까운 연분홍이다. 그러니 의문이 갈 수 밖에.

우리나라에는 털찔레, 좀찔레, 제주찔레 그리고 도감에도 잘 안나오는 요강찔레 등이 있는데 대부분 흰색 계통의 꽃을 피우며 유독 빨간 꽃을 피우는 종은 국경찔레 뿐이다. 하지만 국경찔레는 보기가 매우 드물다. 그런데 하필 '찔레꽃 붉게 피는'이라고 했을까.

찔레꽃 피면 우리의 산과 들은 더욱 요란해 진다. 찔레꽃 가사(3절)에도 있듯 아름다운 찔레꽃 피어나면 꾀꼬리는 중천에서 슬피 울고 호랑나비는 이리저리 춤춘다. 당시 작사가는 생태달력을 꽤나 알았던 모양이다. 찔레꽃 색깔은 좀 그렇지만.

찔레꽃 필 무렵의 생태달력은 일년 중 가장 부산하다. 우선 찔레꽃이 망울을 터트리면 쏘가리 잡는 어부들부터 발에 땀이 난다. 강가의 어부들은 쏘가리의 산란기와 찔레꽃의 개화시기가 같은 것을 알기에 찔레꽃이 폈다 싶으면 알 밴 쏘가리가 이동하는 여울로 내달린다. 일년을 별러온 호기 아닌가. 찔레꽃이 어부들에겐 참으로 기막힌 '알람'인 셈이다.

찔레꽃 피는 시기는 또 뻐꾸기가 날아와 알낳는 시기이기도 하다. 뻐꾸기가 목청돋워 울어재치면 영락없이 찔레꽃이 피는데 이 무렵 뻐꾸기의 행동을 보면 매우 독특하다. 꾀꼬리나 밀화부리 같은 여름철새는 고향인 우리나라로 날아오면 우선 고단한 날개 추스린 뒤 곧바로 둥지 트느라 여념 없는데 뻐꾸기는 되레 노래만 불러제키며 '남의 집' 넘보기에 정신 없다. 이유인 즉슨 뻐꾸기는 둥지를 직접 틀지 않고 다른 새둥지 찾아 알을 낳기 때문이다. 이를 탁란이라 하는데 본능치고는 고약한 심보다.

찔레꽃 필 무렵이면 농촌 들녘도 무척 바빠진다. 절기로는 소만과 망종 사이다. 바지가랭이 내리고 뭐 볼 시간도 없는게 바로 이 즈음이다. 밭둑에 찔레꽃 피고 앞논 참개구리 정신없이 울어제킬 때면 모내기에다 밭일에다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지니 흙묻은 손으로 볼일인들 편히 볼 수 있겠는가.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발등에 오줌 싼다는 말이다. 굽어진 허리 펼 새 없이 방바닥이고 뭐고 등에 대이기만 하면 이내 코고는게 이무렵 농부들이다. 오죽하면 불때던 부지깽이도 거드는 시기라고 했을까.

올핸 봄가뭄이 극심해 농부들이 무진 애를 먹고 있다. 모내기도 서둘러야 하고 보리도 베야 한다. 고구마에다 참깨, 들깨도 심어야 하고 자식들 줄 참외와 수박묘도 이식해야 한다.

풀도 뽑아야 한다. 일거리가 끝이 없다. 그래서 망종(芒種)을 亡終이라고도 한다. 끝을 잊는다는 얘기다.

도시로 나간 자녀들이여 농촌에 뿌리를 둔 도시인들이여 생태달력이 찔레꽃을 피우면 농사달력은 으레 바쁜 농사철이니 대뜸 고향으로 달려가 논배미로 밭뙈기로 뛰어드는 건 어떨는지. 가는길에 시원한 막걸리 받아다 아버지 한잔 삼촌 한잔 따라드리며 FTA다 AI다해 상심한 가슴 달래도 드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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