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위기가 더 급하다
대통령의 위기가 더 급하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8.05.1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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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 부국장 <영동>

지난 2000년 '뉴욕타임즈'가 20세기 세계 최고 지도자로 꼽은 인물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였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괴멸시키며 대서양을 접수하고 유럽의 작은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도약시킨 탁월한 업적이 평가됐을 것이다. 삶 자체가 그야말로 위기의 연속이었고 매번 그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킨 지도자라는 측면도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출생에서 왕위 등극에 이르는 과정도 가시밭길이었다. 그녀는 전유럽의 지배자인 교황과 결별하면서까지 왕비와 이혼을 강행한 냉혈군주 헨리 8세와 궁녀 '앤 볼린' 사이에서 출생했다. 어머니가 결혼 3년만에 간통혐의로 참수당하는 끔찍한 상황을 목격했고 아버지와 재혼한 '제인 시모어'가 아들을 낳자 왕궁에서 쫓겨나는 시련도 겪었다. 배다른 언니 메리 1세가 왕위를 물려받은 후에는 반란에 가담했다는 모함을 쓰고 런던탑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1558년 메리 1세가 후사없이 사망한 후에야 런던탑을 벗어나 왕좌에 올랐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최대의 위기는 여왕 등극후에 찾아온다. 1588년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전함만 220척에 달하는 무적함대를 소집하며 영국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신하들은 희박한 승산을 들어 필리페 2세와 협상할 것을 진언했지만 그녀는 평화를 구걸하기보다는 쟁취하기로 작정한다. 상선을 동원해 부족한 전함을 보강하고 손수 모병에 나서 보병부대를 구축했다. 신하들이 암살을 걱정하며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전선 사령부인 '틸베리 캠프' 방문을 강행했다. 갑옷으로 무장하고 진지를 찾은 여왕은 연단에 올라 "몸은 갈대처첨 연약하지만 내 안에는 왕의 심장과 용기가 있다"며 "병사들과 생사를 함께하겠다"고 약속한다.

영국함대는 프랑스 해안에서 불타는 폐선을 적의 함대 한가운데로 돌진시켜 교란시키는 전략으로 무적함대를 패퇴시켰다. 귀환길에 풍랑까지 만난 무적함대는 고작 54척만이 살아남아 돌아갔다. 수세기 동안 스페인이 누려왔던 대서양의 패권이 영국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뉴욕타임즈는 영국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대제국으로 도약한 것을 엘리자베스의 치적으로 꼽은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8일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국내외 경제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반대로 바로 지금이 기회다"고 역설했다. "우리가 더 변화하고 힘을 모은다면 (이 위기를)기회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자는 그의 열변은 흠 잡을 데가 없다. 문제는 국민에게 보다는 스스로에게 던지고 곱씹어야 할 말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경제의 위기만큼이나 지금 대통령의 흔들리는 위상을 걱정하고 있다. 취임 석달만에 반토막난 지지율과 초·중학생들까지 성토에 나서는 정책적 오류속에서 곤두박질하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위기로 보는 것이다.

대통령은 때로는 인격이 의심받을 정도로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숱한 의혹들을 떨치고 선거에서 압승했다. 런던탑 유폐라는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의 노정과 비슷하다. 취임후 최대 위기를 맞는 상황도 비슷하지만 두사람의 동질성은 거기서 끝이다. 여왕은 안일을 진언하는 참모들을 떨치고 적의 포화가 겨누는 진지를 찾아가 병사들을 독려했지만 대통령은 소통부재론이나 내놓으며 참모나 시스템을 닥달할 뿐이다. 위기를 기회로 되돌리는 것은 왕권까지 건 엘리자베스식 용단 아래서나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은 18일 연설에서 '한미 FTA가 선진국 진입의 증명서이자 경제를 살리는 처방전'이라고 주장했지만 국가 지도자로서 신뢰 회복에 필요한 처방전도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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