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농성 강제 해산이 남긴 것
장애인 농성 강제 해산이 남긴 것
  • 한인섭 기자
  • 승인 2008.05.16 22: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한 인 섭 <사회체육부장>

장애인 정책 확대와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청주시청 본청 2층 소회의실을 무단 점거했던 회원 6명은 농성 7일째였던 지난 14일 오후 3시쯤 10분만에 청사 밖으로 들려나왔다. 현장은 끌려나가지 않으려는 장애인들의 비명과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해야 했던 남·여 공무원 60여명이 뒤엉켜 그야말로 아수라장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청사 밖으로 내몰린 장애인들은 공무원들을 향해 한동안 분노를 표출했다. 장애인들을 들어낸 공무원들 역시 표정은 무거워 보였다. 농성자중에는 여성도 포함돼 여성공무원들도 나서야 했다. 생전 처음 이런 일에 참여했던 일부 여성공무원은 착잡했던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현장은 분노의 고성과 거친 말싸움이 오가 요란해 보였지만 누구든 얼굴 표정이나 속은 편치 않아 보였다.

'강제해산'까지 불러온 1주일간의 무단 점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공권력을 '심각히 위협' 할 정도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게 이유였다. 공무집행을 어렵게 한 회의실 점거가 옳으냐, 그르냐를 따진다면 보통사람이라면 후자를 '정답'으로 꼽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정 안되면 들어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무리한 요구를 일삼는다면 '본때를 보일 필요도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이번 일에 대해 이런 시각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장기 농성이나 집회·시위에 피로를 느낀 이들은 이번 조치에 공감을 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은 이렇게만 볼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사회적 약자'라는 대열이 있다면 맨 앞줄에 속해 있다할 수 있는 이들을 상대로 강제해산이라는 '원칙의 칼'을 들이댔어야 했느냐는 것이다. 원칙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면 할말이 없지만 똑같은 방식을 실행했더라도 청주시는 최소한 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옳지 않았나 싶다. 지난 8일부터 7일 동안 이어졌지만 그 사이 연휴가 3일 있었고 퇴거 통보와 강제해산 방침이 나온 건 연휴 직후였던 13일이었다. 연휴 끝나기 무섭게 강제해산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던 것이다. 결국 농성은 해산시켰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본청 현관 앞 농성과 반발은 더 커졌다. 장애인 농성을 강제해산했다는 부담만큼 얻은 게 없다. 일은 오히려 더 꼬였다.

타협 가능성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쟁점중 하나인 중증장애인(독거장애인, 장애인 부부) '활동보조사업비'에 대해 참모들은 장애인 요구 일부를 수용하는 안을 남상우 시장에게 건의했고 장애인단체 역시 시장면담이 이뤄진다면 해산하는 방안도 고려했다 한다. 그러나 이를 '미봉책'으로 본 남 시장은 '원칙'과 '강제해산'을 택했다.

복지부 보다 한발 앞서 '퍼주기'를 했다는 시선을 우려했다지만 강제해산까지 택해야 했던 사안이었느냐는 점은 두고두고 논란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일선 공무원들의 경직성을 부채질할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단체장의 의사결정과 실행방식은 산하 공무원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처럼 알아서 잘 편성(4억5000만원) 했으니 더 이상 할 얘기가 없고 여기에다 하나라도 더하거나 빼는 것은 '원칙'을 어기는 일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인 것이다.

행정은 항상 정치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60만이 넘는 대도시 행정에는 이런저런 다양한 요구가 있게 마련이어서 무 자르듯 할 사안이 있고, 설득과 타협이 필요한 대목도 있지만 이번 사안은 후자에 가깝지 않나 싶다. 장애인 단체 역시 사정이야 있었겠지만 해마다 장기농성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에 대해 '대화 파트너'들이 상당한 피로감을 느낀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