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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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1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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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 혜 식 <수필가>

시대의 조류에 맞는 사고방식이야말로 현대인으로서 삶의 기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에 걸맞지 않은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바로 나의 남편이다. 남편의 흉을 보자면 이러하다.

체통과 자존심을 목숨처럼 여기는 그는 아내인 나까지 자신의 틀에 가두려한다. 작년 가을 어느 여인의 진정한 아름다움에 반해 나는 그녀의 직장에 취업을 꿈꿨다. 공무원인 남편의 박봉으로 살림을 꾸리다가 가사에 보탬이 되고자 일을 시작했다는 그녀. 자신이 하는 일에 상당한 자긍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그녀의 열정이 나를 사로잡았었다. 전문적인 지식과 자신감을 지니고 당당하게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그녀의 능력에 이끌려 그녀의 직장에 취업을 결심한 난 남편의 동의를 구하였다. 그러자 남편은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이유는 직장 특성상 그 일이 내 적성에 맞지 않을 뿐더러 가정형편도 넉넉한데 남편 체면 깎일 일 있냐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무엇보다 남편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하였다. 마치 남편이 무능해 여자가 직장을 갖는 것으로 자칫 남들이 오해할 것을 염두에 두는 듯했다.

고루하기까지 한 남편의 그 생각이 몹시 못마땅한 난 "여자가 직장을 갖는 게 생계 해결을 위해서만은 아니지 않느냐, 나도 자아실현을 해보고 싶다." 라고 간곡히 의사를 밝혔건만 남편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았다.

아직도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남편인지라 나는 아쉽게도 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남자들은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아무리 외모지상주의라 하지만 여자의 아름다움을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에서만 찾으려한다. 그런 일부 남자들의 그릇된 시각 때문일까 세간엔 '아름다운 외모는 백만 인의 추천장보다 낫다'라는 말까지 회자되고 있는 실정이다.

어디 그뿐인가. 그런 세태에 힘입어 항간엔 성형을 하기 위해 이젠 '성형공동구매시대'가 성행한단다. 얼굴 및 신체 곳곳의 고가 성형을 단체로 하면 병원비를 할인 받을 수 있다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까지 생겨났다.우리가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짐작할 만한 일이다. 입으로는 "겉모습보다 내면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실은 눈은 그 말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겉모습에만 혹해선 안 된다. 아무리 뛰어난 미인이라도 내면의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잖은가.

내가 아는 그녀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고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꿰뚫어 무형의 상품을 판매하기 전에 한발 고객 곁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인간다운 면모까지 갖췄다.

자신과 계약이 이루어진 고객이 다쳐 병원에 입원하자 그녀는 병원생활의 불편함을 고려해 속옷까지 구입해주는 다정다감한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참으로 인간적인 따뜻함과 성실성을 엿볼 수 있어 보기 좋았다.

남녀 불문하고 인간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땐 언제인가. 인간적인 냄새가 날 때이고 자신의 일에 몰입해 열심히 일할 때이다. 내가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게 된 동기도 다름 아닌 남편의 성실성 때문이 아닌가. 주경야독으로 고시 공부를 하며 틈틈이 한우를 사육하던 남편의 그 부지런함에 매료돼 부모의 반대도 무릅썼잖은가.

이젠 겉치장에 몰두했던 우리들의 허황한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이즈막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빼어난 외모도 아니요, 로또복권의 요행도 아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성이다.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고 땀 흘려 일하는 성실함을 한번쯤 공동구매()해 보면 어떨까. 그러면 3D 기피 현상도 사라지고 일자리도 늘어나 세상살이가 한결 더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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