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라는 것과 목사가 된다는 것
목사라는 것과 목사가 된다는 것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1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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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태 종 <삶터교회 담임목사>

아주 작은 우리 교회 식구 중에는 신학을 한 사람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필자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지금 목수 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처음 신학을 마쳤을 때에는 그도 마음 한 쪽에 목사가 되고 싶었을 터이지만 내가 말렸고 그래서 시작한 막일이었는데 그로부터 여러 해 지금은 제법 일이 손에 익은 목수가 되어 있습니다.

제도 안에서 목사 되는 것을 막은 내게는 사실 속에 품은 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형식을 거쳐 목사직을 받는 것보다 실제로 목사라고 불려 부족함이 없는 구도자의 길을 목수 일을 하면서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결코 간단하지 않은 과정을 거쳐 형식에 있어 하자가 없는 목사인 필자가 그런 나를 놓고 볼 때 그것이 목사가 되는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어느 때부터인가 하게 되었고, 그래서 나 스스로를 목사가 아니라 목사가 되어가는 사람이라고 규정해 놓고 있었습니다.

제도가 인정하는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이면에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속채우기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목사라 불리는 일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 내가 내 삶을 다 살고 그 삶을 접어 하느님 앞에 내놓을 때 나 자신의 평가서에 먼저 내가 얼마나 자신이 있을지를 묻는 삶, 그것이 목사의 길이라면 굳이 목사안수라는 형식적 과정과 교회라는 제도화된 자리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행위를 넘어서는 보다 본질적인 일이 있음을 잊지 않기 그래서 목수 일을 하는 그나, 현재 목사직을 갖고 있는 나나, 모두 목사되는 길을 가는 거라는 생각, 그래서 그가 형식적인 과정을 거치는 것을 만류했던 겁니다.

이렇게 말을 하다 보니 불교에서 있다는 돈점논쟁이 떠오릅니다. 한 번 깨달았으면 그걸로 다 된 거라는 돈오돈수론'과 일단 깨달았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면서 닦아서 완성에 이르는 길을 걸어야 한다는 돈오점수론, 뭐 결국은 그 논지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접근하는 사람의 문제일 터인데, 내가 목사와 목사가 된다는 것을 나누고 있는 것이 그 논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마침 이 글을 쓰던 어제가 부처님 오신 날.

돈점논쟁을 가지고 현실을 볼 때 내 입장은 돈오점수론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목사가 되어 목사직을 수행하는 동안 저도 모르게 길을 잃어 형식은 목사지만 내용에 있어서는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이건 굳이 목사에 관한 문제로 그치지 않고 제도가 정해 놓은 모든 직위나 직책에 공통으로 해당되는 문제라는 것이 내 생각인 까닭입니다.

목수인 그가 마침내 성공한 목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비록 목사로 불리긴 하지만 끝내 목사가 아니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나, 그리고 이 땅에 그럴 듯한 직함을 갖고 사는 이들이 그들이 제도 안에서 받은 그 직함에 어울리는 삶의 내용을 채우는 일로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게 되는 세상을 그려봅니다. 내가 오늘 그려보는 이 그림이 현실과 아름답게 겹쳐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두 손을 모아봅니다. 그나 내가 모두 마침내' 목사일 수 있었으면, 그리고 지도적 위치에 있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이 그들의 직함에 걸 맞는 됨됨이를 지니기 바라는 마음을 모은 두 손 안에 담고자 하는데, 자꾸만 손가락 사이의 틈이 마음에 걸리지만, 어쨌거나 가면서 지켜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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