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인사 받고 출근하는 못된 아들
어머니 인사 받고 출근하는 못된 아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0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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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김 명 수 <단양중 교사>

며칠 전 우체국에 간 일이 있다. 우체국 상품 안내대 위에 펼쳐진 카탈로그에 5월 어버이날 효도 선물에 대한 글귀가 있었다.

꼭 일년전 일이다. 병원에서 생사의 기로에 계시는 아버지를 뒤로하고 전국 방과후학교 시범학교 협의회 참가를 위해 출장길에 올랐다. 제주에서 다시 배를 타고 연평중학교에 가는 중 휴대폰이 울렸다. 순간 직감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가 급하다는 전갈이었다. 몇 분 후 결국 아버지가 생을 달리했다는 비보가 이어졌다. 부랴부랴 서둘러 되돌아오는 길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길게 느껴지고 답답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아버지 장례를 마친 얼마 후 채 한 달도 안 되어 또다시 더 큰 죄를 짓고 불효자의 길을 가고 있다. 아버지 사망의 충격과 병간호로 지친 어머니께서 치매로 불쌍한 생활을 하고 계신다. 정상인과의 다른 행동과 언행은 집안 식구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어리둥절하게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온 식구가 촉각을 세우고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어느날 아침 학교 출근을 하려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 "안녕히 다녀오세유"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어머니 목소리였다.

"예" 하고 문을 닫으면서 표현할 수 없는 진한 슬픔과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출근하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들이 나를 짓누르고 괴롭혔다. 정작 괴로운 것은 내가 어머니를 위해 뚜렷이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어수선한 마음을 한쪽으로 미루어 놓고 퇴근하여 집안에 들어서는데 어머니께서 벌떡 일어나시면서 "왔다 가느라 고생했어" 하시는 것이었다.

엄마 "왔다 가느라가 아니고 갔다 오느라 그래야지" 라며 다시 알려 드리자 "그럼 왔다 가느라 고생했지 뭐" 하시는 것이었다. 그 후로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매일 어머니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정말 불효자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학교에서 도덕교과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효에 관한 학습주제가 나오면 왠지 아이들에게 가르칠 자신감이 없어진다. 내 부모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한심한 사람이 누구를 가르칠 수 있단 말인가 마음에 번민이 생긴다. 농촌에서 생활하시면서 5남매의 뒷바라지, 아버지의 10년 병간호, 한시라도 편히 생활하지 못하셨다. 이제 자식들이 조금 살 만하니까 되돌릴 수 없는 불치의 병을 얻으셨다.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산천을 물들이고 산들 부는 봄바람의 부드러움을 느끼시지 못하고 11층 베란다에서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을 아무런 표정없이 내려다보시는 어머니의 옆모습을 보면서 후회의 시간을 보낸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작은 아들이 "할므니" 하고 아양도 떨고 너스레를 펼칠 때면 알 수 없는 특유의 웃음을 보이시며 얼굴에 미소를 담는다. 아들 녀석이 숙제를 하려고 책을 펼쳐 책상 앞에 앉으면 "지욱이 잘하지 그지"를 연발하시는 어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평소 어머니의 자상함과 손자에 대한 자애의 따뜻함을 느낀다.

어머니의 노후를 이렇게 사시게 하다니 나 자신이 미워지고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이 아닌가 매 순간순간 온 가족이 협심하여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해 본다.

아침마다 어머니께 받는 인사를 "너 이놈 앞으로 더 잘해라"라는 명령으로 받들고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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