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사랑
슬픈 사랑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0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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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 규 정 <소설가>

나도 어느덧 오십을 훌쩍 넘기면서 자녀를 결혼시키는 친구들이 제법있다. 지난해만 하더라고 2∼3명의 자녀를 결혼시키더니, 올해는 지난달에 3명에서 오월에도 2명의 자녀가 결혼한다. 자녀의 결혼이 또한 인륜지대사로서 최대경사다. 당연하게 쫒아가서 축하하는 예식장에서 손자들의 자랑부터 늘어놓는 친구도 늘어나는 추세다. 나또한 두 남매의 자식이 결혼할 나이에서 그들이 부럽지만, 우리도 어느 사이에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에서 서글퍼지기도 했다.

지난 주말에도 쫓아가는 예식장에서 딸을 시집보내는 여자 친구가 '이제야 우리 엄마가 나를 시집보내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겠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누구나 자식을 키워보고서야 부모님의 속사랑을 알아차리는 불효에서 자책하고 후회한다. 나또한 마찬가지다. 두 남매를 키워보고서야 부모님의 속사랑에 후회하는 순간들이 적잖았지만, 올해도 어버이날에 출근하는 직장에서 안부전화로 넘어가는 자신이 죄스럽고 부끄럽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포함해서 7남매를 낳았다. 해방 전후와 6.25사변의 피난에서 형제를 키워보기도 전에 보냈다. 나보다 4살이 적었던 여동생이 또한 불치의 병으로 죽으면서 4형제를 키웠다. 4형제를 키우는 것도 그렇다. 보리밥은 고사하고 풀죽이라도 실컷 먹이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에서 고생이야 두말할 여지조차 없다.

부모님이 어찌 키웠든 4형제는 각기 결혼하여 그럭저럭 살아간다. 아버님이 77세에 돌아가시면서 어머님은 형님 내외분이 모시고 산다. 막내가 또한 고향에 살면서 자주 찾아뵈니 다행이다. 나와 2살이 적은 동생이 청주와 울산에 살면서 안부전화조차 뜸하지만 한시름 내려놓는 어머니였다. 그런데 한시름 놓으면서 팔순을 넘기는 어머니가 노환에서 문밖출입조차 힘겨워하시더니, 이제는 한 줌이 넘는 약봉지에 의지하고서도 화장실에나 겨우 드나드는 방에서 꼼짝을 못하신다.

어머니가 집안에 갇혀 지내고부터는, 내가 어쩌다 건네는 안부전화에서 버릇처럼 '전화해줘서 고맙다'라고 하셨다. 명절은 몰론 애경사일로 쫒아가는 고향에서 찾아뵈면 '찾아와서 고맙다'라고 하신다. 집에 돌아와서 도착했으니 걱정 말라는 전화에서도 어김없이 '잘 가서 고맙다'라는 말씀은 동생들에게도 똑같다. 우리가 고맙고 감사하다고 인사드려야 할 말을 어머니가 먼저 건네면서 주객이 뒤바뀐 것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아이가 된다더니, 이제는 어쩌다 찾아뵙는 어머니가 나를 붙잡고 버릇처럼 푸념하시는 말씀이다.

"나는야 너의 형수만 없으면 갓난 이이가 엄마 떨어진 것처럼 불안해서 못 견디겠어. 빨리 죽어야 하는데 죽지도 않고 형수의 치맛자락만 붙잡고 있으니 어쩌면 좋으냐. 이제는 너의 형수도 환갑이 넘어서는 나이에서."

그 말을 듣는 순간에서도 불효막심한 나는 정말로 갓난아이처럼 청순한 어머니의 눈망울에서 글썽거리는 눈물만 머쓱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 한마디 못하는 입조차 뻥긋 못하고 몰아쉬는 한숨에 서글퍼지는 눈망울을 껌뻑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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