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크면 그늘도 큽니다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큽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2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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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상 수 신부 <청주시노인종합복지관>

오랜만에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는 우암산이지만 마음처럼 자주 오르지 못합니다.

나무들이 숲을 이룬 산은 즐겨 사람이 찾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산짐승과 산새들, 온갖 생명들이 어우러져서 삽니다. 사람이 쉬다가고 산새가 쉬다가고 바람이 머물다 갑니다. 모두가 주인공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 모두가 꿈꾸는 세상을 산에서 배웁니다.

삭막한 우리의 도시에는 차와 도로가 중심입니다. 차와 도로가 중심이다 보니 먼지와 소음과 기계음이 도시를 가득 채웁니다. 나무 한 그루의 가치를 소홀히 하다 보니 사람과 생명의 가치는 자연스레 뒤로 밀려나기 일쑵니다. 도시에는 그래서 쉴 곳도 머물 곳도 없습니다. 사람에게 휴식을 줄 수 없는 곳으로 인식합니다. 휴식과 여유를 배우지 못한 우리들은 매우 각박합니다. 때문에 경쟁적인 성공과 부를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참 답답하고 서글픈 현실입니다.

이타적 경험이 없는 사회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천국과 지옥의 큰 젓가락이 생각납니다. 천국의 긴 젓가락은 타인을 먹이기 위해 긴 길이만큼 천천히 여유 있게 움직여 배려하기에 모두 배부르고 행복합니다. 지옥의 긴 젓가락은 자신의 입에 넣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기에 모두 배고프고 불행합니다. 접시만 보고 경쟁적으로 배를 불리려 할 때 모두 불행해집니다. 배려와 여유가 없는 세상은 행복하기 어렵습니다.

잘 짜여진 사회복지제도는 큰 나무와도 같습니다. 나무가 크면 그 그늘도 큰 법이지요. 사회복지제도가 잘 짜여질수록 사각지대도 큽니다. 큰 나무만큼 그 큰 그늘에 대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천국과 지옥의 긴 젓가락과도 같습니다. 그런 제도적 배려를 경험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긴 젓가락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만 급급할까 염려됩니다.

자원의 80%를 부유한 20%가 독점하고 나머지 20% 자원을 80%의 구성원들이 나눠가지는 부의 양극화는 이미 고착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심화되어 10%의 부자들이 90%의 부를 독점하는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제도는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만드는 이러한 폐해들을 극복하고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인간 개개인의 권리를 회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입니다.

큰 나무가 만드는 그늘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부자 한 사람이 독점하고 나머지 아홉 사람이 땀을 뻘뻘 흘려야하는 어리석은 구조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더 이상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늘에 대한 배려를 배우게 되는 사회는 경쟁적인 이기심이 자연스레 사라지게 될 것이며, 거기에서 잉태되는 폭력성과 배타성과 비인간적 문화들은 생겨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기업 중심의 경제 회생만을 강조하며 경쟁과 자유시장 원리를 부르짖는 정부의 여러 정책들을 보노라면 나무 그늘에 대한 배려가 없는 듯 비쳐집니다. 이런 사회에서 빠르게 좇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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