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잔치가 펼쳐졌는데…
봄의 잔치가 펼쳐졌는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2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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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김 태 종 담임목사 <삶터교회>

언제부터인가 나는 모든 존재는 한결같이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보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아주 작아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또는 박테리아로부터 시작해서, 어찌 보면 그게 생명을 가진 존재로 보이지도 않는 티끌들이며, 때로 성가시게 느껴지는 풀이나 벌레들, 그리고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 이르는 존재들이 하나 하나가 모두 그 자신들에게 있어서는 소중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 존재의 속성이라고 말입니다.

존재를 그렇게 규정하면 삶은 그대로 잔치라는 것으로 생각이 이어집니다. 그런 보물들이 우주라는 생명누리의 큰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이라는 것, 그리하여 그게 누구든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인식하고 가꿔가면서 이 잔치의 귀한 손님으로 사는 것이 삶이고, 그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종착역에 이르러 이제까지 살던 삶을 접고 또 다른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것, 그래서 잔치는 계속되고, 그 잔치의 계속이 바로 생명순환의 진실이라는 것을 보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난해부터 우리 교회는 그저 날이 궂지만 않으면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것으로 예배를 대치하였습니다. 하느님이 온갖 형태로 말씀하고 계시는데 괜히 목사랍시고 사람들 앞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이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짓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었고, 내 게으름에 대한 솔직한 고백의 차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나는 우리가 이 세상이라는 아름다운 잔치마당에 초대받은 귀중한 손님이라는 것을 더욱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어제도 괴산 칠성의 갈론 마을에 가서 맑은 물 흐르는 계곡을 따라 걷다가 점심 먹고 돌아왔습니다. 죽은 소나무에 송진이 진하게 박힌 것을 잘라 짙은 솔향을 맡아보라고도 하고, 버들강아지 마침내 노란 작은 꽃들을 온몸에 가득 담고 있는 그 엷은 꽃내음이며, 생강나무가 피운 노랗고 진한 봄의 향기를 코에 대주고는, 개울물 돌돌거리며 흐르는 오솔길을 내려오면서 오늘 맡은 냄새가 뭔지 아느냐고, 그게 바로 대지 어머니의 체취가 아니겠느냐고 아는 체를 하면서 말입니다.

봄의 잔치가 이렇게 흐드러지게 펼쳐졌는데, 이 잔치를 어떻게 하면 잔칫집 주인의 뜻에 가깝게 즐길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서 그 잔치 분위기에 흠뻑 젖어보는 것, 참으로 아름답고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이가 "이렇게 한 해만 다녀도 굉장히 많은 아름다운 곳을 둘러볼 수 있겠다"며 좋아합니다. 거기에 또 붙이지 않아도 될 말을 덧붙입니다. "굳이 명소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참으로 명소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그 있는 자리가 어디이거나 넉넉하게 아름다움을 발견하면서 즐길 수 있는 법이라고, 그러니 여행이라고 하는 것은 여행지가 어디냐 하는 것보다 여행자의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그랬더니 그 젊은이 고개를 끄덕여주는데, 내 말을 알아듣는 젊은이가 또한 그리 이쁠 수가 없습니다.

그런 말들을 덧붙인 건 내가 흥이 돋았다는 뜻일 터, 그렇게 한나절을 보내고 돌아오니 기분 좋은 피로가 온몸을 감싸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습니다. 나른한 몸으로 돌아와 되짚어 보는 하루, 길지 않은 삶, 나 자신을 헐값에 내놓지 않고 또한 내 앞에 펼쳐진 그분의 잔치를 망치지 않는 손님으로 살아야지 하며 어제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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