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대표, 비밀대표
비리대표, 비밀대표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8.04.21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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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 재 경 부장 <천안>

정치무대에선 앳되다고 할 수밖에 없는 31세의 젊은 여성이 안타깝게도 연일 도마 위에 올려져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친박연대 비례대표 1순위 당선자 양정례씨 얘기다.

급기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처음엔 후보등록 서류상의 허위사실 기재가 문제려니 했더니 이젠 공천과정에서의 검은 돈의 흐름을 쫓는 사정(司正)수사로 확대되고 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출국금지까지 당했다. 검찰이 양씨 모녀에게 소환 통보까지 했다. 본인으로선 처음 부딪치는 세파에 마음고생이 보통이 아닐 것 같다.

양 당선자는 이번 비례대표 추천과정에서 1억1000만원의 특별 당비를 공천 헌금으로 냈다고 한다. 빚이 10억원이나 되는 상태에서 말이다. 검찰은 이 돈 외에도 추가로 공천헌금 명목의 검은 뒷거래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연치 않은 인물이 전격적으로, 무조건 국회의원이 될 비례대표 후보 1순위에 올려졌다는 점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검찰이 공천헌금에 대해 칼을 빼들자 각 정당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공천헌금에 관한 한 어느 당이든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공천과정에서 대가성이 있는 돈을 주고 받았다면 처벌하도록 돼 있다. 이 법에 따라 비례대표 후보자가 당선 안정권에 들기 위한 목적으로 특별당비를 냈다면 처벌받게 된다. 형량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꽤나 무겁다. 그러나 이를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돈이 당의 공식계좌에 입금이 됐고 돈을 낸 당사자가 "당선 목적으로 돈을 낸 게 아니라 순수하게 당에 헌금을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말이다.

비례대표 후보자가 당선 안정순위를 받기 위해 정당에 100억원이란 거금을 내고 빠른 순번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다 하더라도 당의 계좌에 입금돼 회계처리되는 '투명한' 돈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대가성을 입증해야 처벌할 수 있다'는 법의 모호성 때문이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양 당선자와 관련된 계좌를 압수해 추적에 나섰다. 당의 계좌에 입금된 돈 외에 친박연대 측 인사들에게 별도의 금품이 건네졌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결국 이 점을 밝혀내는 게 수사의 초점이 될 전망이다. 수사의 결말이 뻔히 예측되는 대목이다.

양 당선자의 사례가 앞으로 좋은 교훈이 되길 기대한다.

각 정당들은 지난 18대 총선 때 지역구 공천과정에서 이미 홍역을 치렀다. 투명성이 없는 석연치 않은 공천기준 때문에 정당들마다 탈당, 무소속 출마사태가 이어졌고 총선에서 국민들에게 심판도 받았다. 그 과정을 겪은 정당들이 이번 사태를 그냥 지나치리라 생각되진 않는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는 취지는 국회 원 구성에 전문성을 더해주기 위한 것이다. 정당들은 환경, 산업, 복지 등 각 분야에서 선출직이 갖추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 줄 사람들을 국회에 진출시켜 입법 기능을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과거 정당들은 자질과 역량, 도덕성 등의 검증없이 논공행상 차원 또는 공천헌금에 목을 매 후보들을 공천하고 국회에 진출시켰다. 비례대표의 전신인 전국구가 '錢국구'로, 비례대표가 '비리대표'나 '비밀대표'라고 불려지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국민들은 차제에 검찰이 이번 비례대표 당선자들에 대해 전방위로 수사를 확대하길 바라고 있다.

한 목소리로 "금권으로 국회의원직을 사고 파는 못된 관행이 더 이상 용납돼선 안된다"고 말한다. 어떤 이는 "비례대표 당선자 전원의 계좌를 추적해 돈으로 의원직을 따낸 사람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그런 말까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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