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과 경찰
취객과 경찰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5 23: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린광장
신 광 수 <진천경찰서>

지난 3월 중순쯤 볼일이 있어 청주에 나갔다가 2004년 3월 차도에서 술에 취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던중 마주 오던 차량과 충돌하여 지금까지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전직 경찰관인 최 선배님의 병동에 잠깐 들렀다. 병상을 지키고 있는 가족에게 안부를 물었더니 여전히 의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온 적이 있었다.

사실 현재 우리 경찰관에게 가장 힘든 일을 묻는다면 단연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어떤 경찰관은 야간에 지구대는 주취자와의 전쟁시간이며, 강도나 도둑보다 더 무서운 것이 주취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만일 누군가 주위에 있는 지구대에 가보면 술에 취해 경찰관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가족이 올 때까지 소파나 의자에 누워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렇게 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국민들의 잘못된 인권의식과 공권력 경시풍조가 가장 큰 문제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비교적 음주에 대해서는 관용적이고 사교상·업무상 음주를 권장하고 있다는 것도 경찰관들에겐 곤혹스럽다.

최근에도 경제사정 악화로 주취자가 급격히 늘고 있으나 이들을 처리할 마땅한 기관이 없고 술에 취해 행패를 부려도 처벌할 적절한 규정이 미흡한 것 역시 심각하게 고민할 사항이다. 굳이 처벌한다면 공무집행방해나 즉심 등을 적용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결국 과도한 음주는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창하게 어느 기관의 통계를 빌리지 않아도 술에 취한 사람은 쉽게 각종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기분 좋게 시작된 술이 우발적 폭행, 음주 사망사고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극단적으로 최 선배님의 경우처럼 남편이며 아버지로서 누려야 할 행복과 미래를 일거에 빼앗기는 불행한 사례도 수없이 많다. 이런 일을 매일 경험하는 경찰관으로서 새 정부가 법과 원칙을 강조한 것이나 이에 발맞춰 경찰이 강력한 법 집행의지를 밝힌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 스스로의 준법정신과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내일쯤 다시 한 번 최 선배님을 찾아 뵈어야겠다. 봄날 힘차게 일어나는 새싹처럼 병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는 최 선배님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