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은 서로 시샘하지 않는다
꽃들은 서로 시샘하지 않는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1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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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의 목소리
전 철 호 교무처장 <충북불교대학>

불교에 입문한 새내기 대학생들과 함께 구례화엄사를 다녀왔다. 오고가는 길목에 피어나는 갖가지 꽃들을 보노라면 마음조차 흥겹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먼저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고, 무심천 길을 아름답게 수놓았던 벚꽃들도 이제는 바람에 흩어지고 말았다. 우아한 자태의 백목련도 송이째 땅에 떨어졌다. 그래도 꽃은 세상에 지천으로 피어나고 또 때가 되면 꽃잎을 내려놓음을 반복한다.

요즘 평범한 시민들이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화려하고 큰 송이를 자랑하는 서양 꽃들에 밀려서 한동안 뒷전이었던 들꽃들이 이제는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길러지고 소박하게 가정의 베란다와 작은 정원을 꾸미기도 한다. 꽃들에게도 역할 분담이 있는 듯하다. 화려한 꽃은 그 화려함으로 역할을 하고, 길가의 들꽃은 그 나름대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느 꽃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시샘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최고의 경전으로 '화엄경'을 친다. '화엄'이란 여러 가지 꽃으로 장엄하고 꾸민다는 의미이다. '화'는 깨달음의 원인으로서의 수행에 비유한 것이고, '엄'은 수행의 결과로서 부처님을 아름답게 장엄하는 것, 즉 보살이 수행의 꽃으로써 부처님을 장엄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정작 중요한 것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들만을 뽑아서 장엄하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무심히 피어있는 이름 모를 잡초들까지 모두 포함된다는 점이다.

꽃들도 욕망이 있다면 꽃송이가 탐스럽고 향기도 아름다운 꽃이 되고 싶을 것이다. 보기도 좋고 날아드는 벌에게도 사랑 받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꽃들은 야생초에서 작게 피어난 꽃이라고 서러워하지 않는다. 눈길 끄는 꽃들에 대한 질투나 시기심도 없다.

우리네 삶에도 5월의 화려한 장미만 필요하지는 않다. 3월에 피워주는 개나리도 필요하고, 며칠 동안이지만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벚꽃도 필요하고, 오랫동안 피고 지는 무궁화 꽃도 필요하고, 가을이면 하늘거리는 코스모스도 필요하고, 깊은 산속에서 반겨주는 이름 모를 야생화도 필요하다.

한가지 꽃만 있다면 얼마나 싱겁고 재미없을 것인가. 다양한 꽃들이 있어서 꽃들마다 서로 시샘하지 않고 자기 몫을 해줄 때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꽃들이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선거의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더니 국회의원 선거를 마치면서 당분간은 거리에 나부끼는 선거벽보나 현수막을 보기 어려울 것이고, 선거로고송을 틀어놓고 율동을 하는 선거종사원들도 보기 힘들듯하다.

선택을 마치고 나면 이런저런 뒷말들이 무성하다. 승리자보다는 패배자가 많은 것이 선거의 결과이고 보면 선택된 사람들은 화려하게 피어나는 꽃이고, 낙선의 고배를 마신 사람들은 떨어진 꽃이거나 다음을 기약하는 야생초일 수도 있을 것이다.

떨어진 꽃들은 시운을 탓하거나 바람을 원망하지 말고 다음 해를 기약하면서 막 피어난 꽃들에게 축하를 보내주기도 하고, 야생화가 대우 받는 날이 오듯이 밑바닥 인심잡기에 주력한다면 언젠가 민심의 시선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각자의 위치에서 그들이 내걸었던 지역주민을 위해서 노력할 수 있다면 그것이 화엄의 세계가 아닐까.

막 피어난 꽃들은 그 화려함에 도취하지 말고 국민에게 약속한 말들을 실천하면서 아름다운 향기를 품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에 또 멋진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저 화려한 꽃들도 잎을 떨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꽃으로 있을 때 멋지게 자기 역할을 해보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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